[김봉규 기자의 '지구촌 산책' .6] 스위스 라우터브루넨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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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19 08:01  |  수정 2021-07-19 08:15  |  발행일 2021-07-19 제21면
설산 봉우리 거대한 협곡마을…야생화·폭포수 절묘한 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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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알프스 아래에 있는 협곡 마을 슈테헬베르크 숙소에서 바라본 알프스 모습. 슈테헬베르크는 라우터브루넨에서 협곡 안쪽으로 더 들어간 곳에 있다.
여행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오히려 그럴 때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여행이 선사하는 특별한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이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타오르미나에서 3일 동안 있다가 밀라노로 갔다. 공항에서 렌터카를 타고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향했다. 알프스산맥 아래를 뚫은 터널이 아니라 알프스 위로 넘어가는 행로를 선택했다. 고타르 패스, 푸르카 패스 등 고갯길을 거쳐 스위스 베른주에 있는 라우터브루넨에 도착했다. 알프스를 넘어가는 드라이브 여정은 잊지 못할 감동의 시간이었는데, 라우터브루넨에 도착하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인터넷으로 예약해 놓은 숙소를 찾아가 확인하니 정작 주인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해는 저물고, 빈방은 없다고 하니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백방으로 새로운 숙소를 알아본 끝에 4명이 머물 숙소를 찾아냈다. 협곡 안쪽으로 한참 더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지만, 찾아가 보니 주변 풍경과 환경이 예약한 숙소 주변보다 훨씬 더 좋았던 것이다.

인터넷 예약 호텔 펑크에 난감한 상황
현지서 즉석 수소문 해 더 좋은 숙소
여행의 묘미는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

만년설 녹은 물 흘러내리는 72개 폭포
한적한 거리엔 여유로운 농부의 손길
밤하늘 별빛보니 저절로 노래가 흥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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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헬베르크에 있는 한 농가 풍경.
◆ '폭포마을' 라우터브루넨

라우터브루넨은 알프스 설산 봉우리 아래 펼쳐진 거대한 협곡에 있는 마을이다. 수직 절벽 사이의 커다란 골짜기에 햇살이 드리워지는 이곳의 풍경은 스위스를 대표하는 사진들 속에도 종종 등장한다.

라우터브루넨은 브라이트호른(4천164m) 빙하에서 발원한 루치네 강이 흐르는 U자형의 협곡(길이 15㎞) 초입에 자리하고 있다. 인터라켄에서 10㎞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해발 고도 800~900m 되는 이 협곡 골짜기는 300∼500m의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절벽 산허리를 흘러내리는 수많은 폭포와 골짜기, 멀리 보이는 설산, 야생화 가득한 목초지 등이 특별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빙하가 만든 이 협곡에는 폭포가 정말 많다. 299m의 큰 낙차를 자랑하는 슈타우프바흐 폭포를 비롯해 72개의 폭포가 있다. 라우터브루넨이란 이름도 '울려 퍼지는 샘'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2019년 6월25일, 이곳에 도착하니 아직 낮인데도 해는 안 보이고 그늘이 져 어둑했다. 협곡 안쪽 저 멀리 만년설로 덮인 알프스 봉우리들이 햇살을 받아 더욱 빛나고 있었다. 일행 중 한 명이 예약한 호텔에 가서 예약 내용을 확인하는 동안 근처를 둘러보았다. 만년설이 덮인 산봉우리들을 배경으로 하늘을 떠돌고 있는 행글라이더들이 협곡 사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한참 후 예약을 확인하러 간 일행이 오는데 얼굴빛이 어두웠다. 숙박비를 다 지불하고 예약했는데 그 주인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예약하면 이런 일도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떻게든 주변에 숙박할 곳이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고생하는 동안 '흩날리는 물'이라는 의미의 슈타우바흐 폭포를 비롯해 주변의 멋진 풍광을 감상했다. 얼마 후 숙박할 곳을 찾아냈다고 했다. 라우터브루넨에서 협곡 안쪽으로 더 올라간 곳에 있는 슈테헬베르크 마을에 있는 작은 호텔이라고 했다.

다시 차를 몰고 그곳으로 향했다. '폭포마을'답게 가는 동안 양 옆의 절벽 곳곳에 만년설이 녹은 물이 200~300m 높이에서 흘러내리는 폭포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10리 이상 달려 도착해보니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가장 안쪽에 있는 숙소였다. 숙소 바로 앞에는 농가 주택 두 가구가 있고, 주변에 띄엄띄엄 있는 농가들이 눈에 들어왔다. 호텔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농가보다 약간 더 큰 건물이었다.

라우터브루넨은 마을도 크고 관광객이 많아 붐비는 분위기였는데, 이곳은 너무나 한적했다. 가축먹이나 거름을 나르고 꽃밭을 일구는 농부들이 이따금 보이는 정도였다. 짐을 풀고 숙소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숙소 뜰에 앉았다. 주위는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는데, 멀리 협곡 안쪽으로 만년설에 덮인 알프스 산봉우리들이 햇살을 받으며 빛나는 풍경이 그림처럼 눈에 들어왔다. 기막히게 아름다운 절경이었다. 양 옆 절벽에는 200m 이상 되는 폭포들이 절벽에 걸려 있었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그 풍광에 이끌려 함께 주변을 거닐기 시작했다. 만년설과 밤하늘 별빛이 밝혀주는 은은한 협곡 들판의 분위기가 절로 우리를 끌어들였다. 빙하가 녹은 물이 흐르는 하천 옆 목초지 길을 따라 걸었다.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시간을 보냈다. 모두 '잊을 수 없는 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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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규 전문기자
◆암굴 폭포 트뤼멜바흐

이곳의 많은 폭포 중 괴테, 바이런, 멘델스존 등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사랑했다는 슈타우프바흐 폭포와 더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독특한 폭포가 하나 있다. 트뤼멜바흐 폭포다.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이 트뤼멜바흐 폭포는 보통 리프트를 이용해 올라간 뒤 내려오면서 그 특별한 풍경을 둘러보는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폭포에 들어서면 알프스의 대표적 산봉우리인 아이거(3천970m), 묀히(4천107m), 융프라우(4천158m)에서 빙하가 녹아 내려온 물이 매초 2만t의 무게로 떨어지는 압도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다양한 모습의 암굴을 따라 암벽에 부딪치며 떨어져 내리는 폭포의 모습은 이곳이 아니면 볼 수가 없는 독특한 풍경을 선사한다. 암굴 속의 길을 따라 걸으면서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폭포의 박력을 만끽할 수 있다.

10단으로 이루어진 이 계단형 폭포는 높이가 140m, 평균 너비는 12m 정도다. 수량은 12~3월에는 적고, 4~10월에는 많은 물이 쏟아져 내린다. 폭포 이름은 '드럼 같은 소리를 내는 물'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빙하기 말기에 형성되었으며, 산속 깊이 자리하여 1877년에야 발견되었다.

슈테헬베르크 근처에 영화 '007' 시리즈가 촬영된 곳이어서 더욱 유명해진 쉴트호른(2천970m)이 있다. 1967년에 완공된 세계 최장 길이의 쉴트호른 케이블카를 이용해 오르게 된다. 케이블카가 완공된 이듬해 영화 '007' 시리즈가 촬영되면서 쉴트호른은 세계적인 여행지로 명성을 확고하게 다졌다.

6월27일에는 산악열차로 융프라우를 오르내리며, 알프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꼽히는 '베른 알프스'의 풍광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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