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황희 장관은 응답하라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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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05   |  발행일 2021-08-05 제23면   |  수정 2021-08-05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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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문화부장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매주 주례회동을 한다. 국정 운영 전반을 논의하고, 최종적으로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다. 지난달 7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이건희 미술관 입지선정을 발표하기 전에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국무총리의 주례회동이 있었다. 이건희 미술관이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이라 당연히 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고 알려진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이 자리에서 문체부가 내놓은 안건 즉 이건희 미술관을 서울 용산과 송현동 부지 둘 중 하나를 정해 짓겠다고 보고한 데 대해 문 대통령은 "굳이 문화시설이 많은 서울에 미술관을 둘 필요가 있겠느냐. 지방에서도 소외되지 않고 골고루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끔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소식통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통령과 뜻을 함께한 김부겸 국무총리도 "영호남, 충청 등 전국에서도 이건희 컬렉션을 잘 감상할 수 있도록 분관 또는 분원을 설립하든지 또는 기존 국립미술관 시설을 활용하라"면서 문체부 안을 "발로 걷어찼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지난달 7일 황희 문체부 장관의 (이건희 미술관 입지 선정) 발표문에는 지방을 배려하라는 대통령의 의중도, 총리의 구체적인 내용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추상적으로 두루뭉술하게 "순회 전시 등의 방식으로 지역의 관람 기회를 넓히고 지역문화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기증관 건립과는 별도로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위해 힘을 쏟던 대구를 비롯한 전국 40여개 단체는 졸지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황희 장관은 대통령과 총리가 주례회동에서 맞장구친 사안을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모르고 있었는지, 알고도 모른 체 한 건지 궁금하다. 만약 알고도 모르쇠라고 했다면 그는 문화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국정 가치로 삼는 현 정부의 문화 수장이 될 자격이 없다. 더구나 대통령과 총리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직무를 유기한 공무원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 낌새는 지난 5월24일에도 있었다. 당시 황 장관은 한 서울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족의 기증 정신과 접근성 등을 고려해 이건희 미술관을 건립하겠다"는 취지를 밝혀 삼성가의 뜻을 무시할 수 없다는 뉘앙스를 넌지시 내비쳤다. 황 장관은 이 발언으로 지방언론으로부터는 뭇매를 맞았지만, 서울에 본사를 둔 보수적인 J일보를 비롯해 진보언론이라고 하는 H신문에게서도 응원을 받았다. 이들은 지방에 이건희 미술관을 지으면 "지붕에 물이 샌다"느니, "남루한 숟가락을 얹지 말라"느니 운운하면서 조롱했다. 하기야 세종시 정부청사 문체부 기자실엔 지방언론 기자실조차 없다. 그런데 여기서 좀 솔직해지자. 삼성이 세금으로 당연히 국가에 내야 할 돈을 물납(미술품)으로 대체했다면, 국가가 지향하는 국정 가치와 목표에 따라 국민의 요구에 따라 물납을 적재적소에 쓰면 된다. 즉 삼성이 미술품을 기증했다면, 그 소유권은 국가가 가지는 거고, 집행도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하면 될 일이다. 결국 황 장관은 삼성의 눈치를 보고, 문재인 정부의 문화분권 정책을 역행한 결정을 한 거나 마찬가지다. 이건희 미술관 입지 선정 발표 이틀 전 대구를 찾은 행보도 신중하지 못했다. 모레 '불이 날 집'을 찾아 위로하러 온 것과 무엇이 다른가.

황 장관은 보름 전부터 매일 코로나 팬데믹 속 땡볕에 문체부 청사 앞에서 '이건희미술관 서울 건립 결정 철회' 피켓을 들고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는 대구시민의 열망을 알기나 하는가. 어서 응답하라!
박진관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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