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칼 짚고 일어서니 원수가 떠네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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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17   |  발행일 2021-09-17 제21면   |  수정 2021-09-17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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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9월17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이 창설되었다. 그동안 청산리대첩 등 독립군의 항일전투가 끝없이 이어졌지만, 정식 정부군이 출범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김구 주석은 선언문을 통해 "일제를 타도하고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항전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창군 취지를 천명했다.

정부 정규군이 창설되었는데 군가가 없을 수 없다. 대구 달성 화원 명곡리 출신의 광복군 정훈처장 이현수(또는 이두산)가 직접 '광복군 행진곡'을 만들었다. 신흥무관학교 교가 등 독립군 노래들은 외국곡에 노랫말을 붙인 것이 대부분인데, '광복군 행진곡'은 가사도 곡도 순수 창작물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삼천만 대중 부르는 소리에/ 젊은 가슴 붉은 피는 펄펄 뛰고/ 반만년 역사 씩씩한 정기에 광복군의 깃발 높이 휘날린다/ 칼 짚고 일어서니 원수 치 떨고 피 뿌려 물든 골 영생탑 세워지네/ 광복군의 정신 쇠같이 굳세고 광복군의 사명 무겁고 크도다"

문자로 소리까지 알 수는 없지만 노랫말만으로도 '광복군 행진곡'이 행진 군가답게 선 굵고 힘차게 불릴 것임은 짐작되고 남는다. 이어서 노래는 "굳게 뭉쳐 원수 때려라 부셔라. 한맘 한뜻 용감히 앞서서 가세/ 독립 독립 조국광복 민주국가 세워보자" 하고 이어진다.

'광복군 행진곡'의 노랫말은 문학 작품인가, 아닌가?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하는 윤석중 작사, 정순철 작곡의 행사요 '졸업식 노래'에서 노랫말만 분리했을 때 그 글은 문학 작품인가, 아닌가?

2016년 미국 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만큼 문학에 대한 세상의 인식이 바뀌었다. 고리타분한 사고에 갇힌 낡은 문화를 벗어나야 한다. 대중가요 노랫말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시대에 독립군가 가사를 문학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해서는 정신사의 문제 이전에 시대착오적이다. 갈래가 아니라 수준이 기준이다. 필자는 포항 학도의용군 승전기념관에 게시되어 있는 서울 동성중 당시 3학년 이우근의 편지가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하지만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발행 제도가 바뀌었는데도 그렇게 하는 출판사는 없다. 발행 제도는 무엇 하러 바꾸었나? 대학시험에 출제될 일이 없다고 보는 것인가? 논의가 이렇게 되면 우리의 문화 수준이 너무 천박해진다. 문학이 뿜어내는 향기가 입시 현장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일상생활에 곱게 스며드는 날은 언제 올 것인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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