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찌들어 가는 생계형 임대사업자, 씨가 마르는 전세

  • 권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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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10   |  발행일 2021-09-10 제22면   |  수정 2021-09-10 07:07
임대보증보험 가입 의무화
보험료 부담 느낀 임대인들
전세계약 월세 전환 가속화
세입자 자금축적 수단 소멸
계층이동 사다리도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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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업 객원논설위원

1960년대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 우리나라 서민들의 주거 마련 과정은 대체로 이렇다. 취직하고 결혼하면 전세방이나 작은 전셋집을 구하고, 자녀가 생기면 조금씩 더 큰 전셋집으로 옮기다가 전세보증금과 불철주야 저축한 돈을 밑천 삼아 드디어 자기 집을 마련한다. 이후 주거환경이 나은 곳으로 계속 이동하게 되는 성장 사다리를 타게 된다. 산업화 과정에서 금융권의 대출은 산업육성에 집중되어 주택담보대출 같은 가계대출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돈이 없는 거주 수요자와 집을 매입하고 싶지만, 돈이 부족한 사람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전세제도는 서민들의 주거 안정에 크게 기여해왔다. 세입자는 계약만료가 되면 원금을 고스란히 돌려받는 전세로 살며 자금축적을 통해 집 마련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고, 자가 소유자들도 자녀학자금 같은 수입으로 감당이 안 되는 목돈이 필요하면 방 한 칸을 비우고 전세를 주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전세는 우리에겐 대출의 대체재였고 바닥에서 시작하는 서민들의 계층이동 사다리였다.

임대차 3법이 시행된 지난해 7월31일 이래 1년 사이 서울의 원룸 전세금이 1천436만원, 9.3% 올랐다. 폭등한 전세금이 이 정부 들어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을 더욱 밀어 올리는 악순환을 그리고 있다. 2년 계약 갱신을 청구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증액 상한을 5% 이내로 제한하는 전월세상한제를 골간으로 하는 임대차법 시행 직후부터 전세 매물이 품귀 현상을 빚는 전세대란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전세와 매매가격의 동반 급등이 일어났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많다. 또한 최근 시작된 가계대출 제한 아래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임대인의 세 부담까지 커지면서 전세는 줄고 월세는 증가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실제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 건수는 8천324건으로 전년 동기 1만4천7건 대비 40.6% 줄어들었다.

지난해 발표한 7·10 부동산대책으로 지난 8월18일부터 모든 임대사업자에 대한 임대보증금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화됐다. 임대보증보험은 임대사업자가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보증기관이 대신 내주는 제도로, 이를 지키지 않으면 임대보증금의 10%, 최대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보증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담보대출 비율이 주택가격의 60% 이하여야 하는데, 다가구·다세대주택의 경우 공시가격이 아파트에 비해 낮기 때문에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보증보험 의무가입은 보험료의 75%를 부담해야 하는 임대사업자의 피해뿐만 아니라 가입을 원치 않는 임차인의 부담까지 가중하여 전세 계약을 월세로 전환하는 추세를 더욱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현재 주택임대사업자 48만여 명 중 60%는 집 한 채만 세를 주고 있고, 이들 중 90%는 아파트보다 임대료가 낮은 다세대주택이나 빌라다. 이들은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 대신 시세의 60~70% 수준에서 전월세를 공급하고 있는데 전월세 평균가격을 감안할 때 1주택 임대사업자들의 임대료 수입은 월 100만원을 넘기 힘들다는 것이 일반적인 추정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생계형에 60세 이상 고령 은퇴자들이 많다. 주거수요가 적은 지역의 이들 영세사업자는 세입자 유인을 위해 보험료를 전액 부담해야 하는 대책 없는 상황에까지 내몰리고 있다.

"월세는 사라지는 돈이고 전세는 내 돈"이다. 정부의 돈줄 조이기가 장기화하고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면 세입자의 총비용은 2~3% 증가한다. 결국 세입자나 임대인의 요긴한 자금축적 수단이 되어왔던 전세가 소멸되면 서민들의 계층이동 사다리를 발로 걷어 차버리는 결과가 된다.
권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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