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메일] 국회 법안발의 세계 1위의 허상

  • 김승수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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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13   |  발행일 2021-09-13 제25면   |  수정 2021-09-1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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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수 국회의원 (국민의힘)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엄청 일을 많이 한다. 법률안 발의 건수만 보면 단연코 세계 최고다. 우리나라 의원들의 법안발의 건수는 19대 1만6천729건에서 20대 2만3천47건으로 6천건 이상 늘었고, 21대 국회는 임기를 시작한 지 1년 조금 지났지만 벌써 9천건 이상이 제출되어서 20대 국회 4년 동안 발의량의 40%에 육박한다. 우리나라 20대 국회를 기준으로 외국과 비교 시 독일의 60배, 영국의 90배를 상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극히 낮다. 2018년 한 여론조사기관의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조사에 의하면 국회의 신뢰도는 1.8%로, 대기업 6.9%, 언론 6.8%, 검찰 2.0% 보다 낮은 최하위를 기록했다.

왜 이런 모순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실적 쌓기용으로 법안발의를 너무 가볍게 하고 있고, 그 처리과정도 충분한 숙의과정 없이 날림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부입법의 경우 관계기관 협의, 입법예고, 총리실 규제심사,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와 대통령 재가 등 여러 절차를 거쳐 제출되지만, 의원입법은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되고 의원 10명 이상의 동의만 받으면 바로 제출할 수 있다. 그래서 정부입법은 통상 1년 이상 걸리지만 의원입법의 경우 한 달도 채 안되어 통과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의 날치기 처리로 주택시장에 큰 혼란을 야기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상임위 상정에서 본회의 통과까지 단 이틀이 걸렸다.

국회의원들의 법안발의가 쉽다 보니 단순히 시류에 편승한 입법도 많은데, 언론에 국민적 관심을 끄는 사건이 보도되면 일주일도 안되어 관련 법안이 여러 의원들로부터 줄줄이 제출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졸속으로 입안된 법안들은 현장에서 엉뚱한 역효과가 나타나거나 준비가 안 되어 시행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도로교통법'은 13세 이상에게 면허 없이 전동킥보드를 허용했다가 안전우려로 몇 달 만에 다시 16세 이상 면허소지자 자격으로 재개정했다. '전기안전법'은 소비자 안전을 위해 의류·잡화용품에 KC인증마크를 의무화했다가 수십만원의 인증비용 부담으로 소상공인에 피해가 커서 원점으로 되돌렸다.

의원들이 법안발의를 남발하는데는 정당이나 시민단체 등이 단순히 발의 건수를 가지고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것도 한몫을 한다. 법안처리 실적을 높이기 위해 민주당의 모 의원은 동일한 단어 하나만 고친 10여 개 법안을 한꺼번에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과잉입법으로 제대로 논의 못하고 폐기된 법안이 20대 국회 기준 1만4천769건으로 입법 폐기율은 68.4%에 달한다.

21대 국회 들어와 180석의 거대 여당이 된 민주당이 입법 폭주를 자행하면서 국회 신뢰도는 더욱 실추되고 있다. 최근 민주당이 문체위와 법사위에서 강행 처리한 언론중재법은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에 대해 국내 언론관련 협회는 물론 국경없는 기자회 등 국제 언론단체에서 강한 비판을 받았고, 김여정 하명법으로 불리는'대북전단금지법'과 함께 UN으로부터도 우려 섞인 서한을 받기도 했다. 국가적 망신이다.

이러한 부실·과잉 입법에 대한 해결방법은 없을까? 먼저 국회의원들 스스로 발의 법안에 책임감을 가지고 신중해져야 할 것이다. 정당이나 시민단체 등의 의정활동 평가도 단순히 발의 건수보다는 법안 내용의 중요성과 통과율에 초점이 맞춰졌으면 한다. 극단적으로 연간 의원발의 건수를 제한하는 '입법총량제'를 도입해 보는 것도 어떨까 싶다.
김승수 국회의원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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