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조선왕실의 태실…폐위 뒤 광해군 태실지는 왜 훼손됐을까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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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17   |  발행일 2021-09-17 제21면   |  수정 2021-09-17 08:14
길지에 아기의 태 묻는 '장태문화', 왕실선 국운과 연관지어 해석하기도
저자 전국 100여곳 현장 답사한 후 소개…잘못 알려진 정보도 바로잡아

광해군태실
조선 15대 군주 광해군의 태실이 자리하고 있는 대구시 북구 연경동 태봉. 태봉은 광해군의 태(胎)가 묻혀있다는 이유로 '탯등' 혹은 '탯덩이'라 불렸다. <영남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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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 지음/휴앤스토리/284쪽/1만4천원

태실(胎室)은 아기의 태를 길지에 묻는 '장태문화(藏胎文化)'다. 태를 소중히 간직하고 보관하는 것이 태주가 자라는 데 있어 중요하게 인식됐고, 특히 왕실의 경우 나라의 국운과도 연관 지어 해석하기도 했다. 이처럼 길지에 태실을 조성했던 자취는 지금도 전국적으로 태봉산(胎封山·胎峰山)과 태봉리(胎封里) 등의 지명으로 남아 있다.

조선왕실의 태실은 그 형태에 따라 왕자·왕녀의 태실인 아기씨 태실과 왕의 태실인 가봉태실(加封胎室)로 구분된다. 이 중 가봉태실은 태주가 왕위에 오를 경우 별도의 석물과 가봉비를 설치했다.

대구경북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태실을 갖고 있어 의미가 깊다. 특히 대구지역 가봉태실의 경우 북구 연경동 광해군 태실이 유일하다. 경북은 김천 정종 태실, 성주 태종 태실, 성주 단종 태실, 성주 세조 태실, 영천 인종 태실, 예천 문종 태실, 예천 장조 태실, 예천 폐비 윤씨 태실, 영주 소헌왕후 태실 등 9곳이 남아 있다. 특히 성주는 세종대왕자태실로 축제까지 하고 있다.

대구를 대표하는 태실은 광해군 태실(북구 연경동 산136)이다. 하지만 태실지 주변으로 석물이 파괴된 채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다. 광해군이 폐위되면서 정치적 배경이던 북인과 대립각을 세웠던 대구지역 서인 또는 남인 유림 후손들이 훼손한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광해군 태실은 대구에 태를 조성했음을 알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 용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 중인 태지석과 태실비에 새겨진 경용(慶龍) 및 만력 3년인 1575년(선조 8)에 출생한 기록 등을 통해 광해군의 태실인 것을 알 수 있다. 광해군 태실은 2018년 발굴조사를 통해 태실의 정확한 위치와 태함 등의 하부 구조가 확인되었으며, 국가사적 지정을 준비 중이다.

영천 은해사 뒤쪽에 있는 태실봉의 정상에는 인종의 태실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통해 인종의 태실이 영천(永川) 공산(公山)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 기록인 태봉을 통해 1928년 8월19일부터 21일에 걸쳐 인종의 태실이 봉출되었고, 현재 서삼릉 경내로 옮겨진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밖에 성주 단종 태실의 경우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난간석과 동자 석주 석물이 추가로 확인됐다.

저자는 지난 2년6개월간 전국의 태실 100여 곳의 현장을 찾아다녔다. 그중에는 민통선 내부에 있어 평소 접하기 어려운 태실부터 창덕궁 후원에 조성된 태실 추정지 등 전국의 태실과 그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잘못 알려진 태실 정보 등을 바로잡는 등 태실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독자들이 태실을 쉽게 알 수 있도록 배려했다. 소제목은 태실이란 / 왕의 태실 / 그 역사의 현장 / 왕자·왕녀들의 태실 / 창덕궁 후원에 조성된 태실 / 왕비의 태실 / 사진으로 보는 태실 등으로 구성했다. 마지막으로 과거 태실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이 가지는 특징이다.

김준혁 교수(한신대 한국사 전공)는 추천사를 통해 "그간 태실이 다른 문화재에 비해 조명이 덜 된 측면이 없지 않다"며 "이 책의 발간이 태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저자인 김희태 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장은 대구 출생으로 대학에서 문화교양학과를 전공했다. '문화재로 만나는 백제의 흔적: 이야기가 있는 백제'를 펴냈으며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의 역사에서 배우는 지혜' '이야기가 있는 화성' 등을 지역 출판물에 연재하고 있다.

그는 "태실 유적의 훼손과 파괴가 심해 현장을 찾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며 "이 책이 태실에 관심이 있거나 연구하는 데 있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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