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여행] 경산시 중방동 자연마당과 남매지, 나지막한 구릉에 핑크뮬리·꽃무릇…걷고싶다, 가을의 길목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
  • 입력 2021-09-17   |  발행일 2021-09-17 제18면   |  수정 2021-09-17 07:59
장기간 훼손·방치된 공간 생태복원
2014년 주민 휴식공간으로 탈바꿈
초지·습지·데크산책로 등 잘 갖춰
길 건너 '남매지' 야간 음악분수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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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환경부 공모사업으로 선정돼 조성된 경산시 중방동 '자연마당'. 훼손되고 장기간 방치되어 있던 동산의 원지형과 수계를 찾고 토양과 식생을 복원해 '남매들에 깃든 숲찬마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화살나무는 점차 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낙엽수의 청량한 그늘 아래에는 길고 붉은 꽃무릇의 섬세한 꽃잎이 공작부인의 치마처럼 흐드러졌다. 엉덩이를 치켜들고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던 사내가 화들짝 허리를 편다. 수목의 가지 사이로 하늘이 슬며시 보이면 잘생긴 소나무들 아래에 청보라 빛 맥문동이 아직도 꽃피우고 있다. 가까운 정자에서는 사람들의 음성이 들려오고, 걸음을 방해하는 나비들의 날갯짓과 졸음을 몰고 오는 풀벌레 소리가 구릉진 길을 광광 울린다.

장기간 훼손·방치된 공간 생태복원
2014년 주민 휴식공간으로 탈바꿈
초지·습지·데크산책로 등 잘 갖춰
길 건너 '남매지' 야간 음악분수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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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의 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잘생긴 소나무 아래에 청보라 빛 맥문동이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다.

◆경산 자연마당

너른 하늘 아래 연한 자줏빛의 쑥부쟁이가 무리 지어 낮게 피었다. 가느다란 하나의 줄기에 꽃 하나, 소박하고도 품위 있고 우아하다. 보이지 않으면 잊고 있다가 다시 보기만 해도 세상이 새롭게 느껴진다. 쑥부쟁이의 꽃말은 그리움 또는 기다림이라 한다. 쑥을 캐러 간 불쟁이(대장장이)의 딸이 죽은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라는 전설이 있다. 쑥부쟁이 너머로 키 큰 갈대가 하늘을 쓰다듬으며 몸을 흔든다. 길은 굴렁굴렁 나아간다. 걸음이 느려지는 오르막에서나 걸음이 빨라지는 내리막에서나 부러 수고로이 휘어놓은 사행의 길에서나, 길은 언제나 보상과 같은 자연을 내어준다. 그것은 꽃이거나 교목의 숲이거나 또는 관목의 숲이나 초원과 습지 같은 것들이다.

이곳은 경북 경산시청의 뒷산이다. 도로 하나를 건너면 남매지다. 산의 이름은 모른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앞동산이거나 뒷동산이거나 했을 듯하다. 높이가 76.8m 정도라 하는데, 사방이 조망되는 높이에서 바라보면 연속된 구릉지라 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2014년 환경부 공모사업으로 선정돼 조성된 '자연마당'이다. '자연마당'은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데 훼손되고 방치된 공간을 복원하고 다양한 생물 서식지를 조성해 도시의 생물 다양성을 증진시킴과 동시에 주민들에게 쾌적한 생태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사업이다. 보통 도시 내의 유휴지 또는 훼손되거나 방치된 부지를 생태적으로 복원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경산 자연마당은 1969년에 공원시설로 최초 결정된 후 일부 지역이 불법경작지로 이용되는 등 장기간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지금 경산 '자연마당'은 '남매들에 깃든 숲찬마당'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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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수의 청량한 그늘 아래에 길고 붉은 꽃무릇의 섬세한 꽃잎이 흐드러졌다.

복원의 시작은 훼손되기 이전의 지형과 수계를 찾는 일이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유적을 발견하기도 한다. 구릉의 정상부에 잘 정돈된 풀밭이 작게 펼쳐져 있다. 2016년 공원부지 조사 중 이곳에서 20여 기의 삼국시대 석곽묘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뚜껑이 있는 굽다리접시(유개고배), 굽 달린 긴 목 항아리(대부장경호), 목 짧은 항아리(단경호) 등의 유물도 다량 출토되었다. 인근에 위치한 임당동·조영동 무덤군과 비교해볼 때 무덤의 규모가 작고 발견된 유물의 질이나 양이 빈약한 것으로 보아 임당동과 조영동 무덤군을 축조한 집단의 하위 취락에 거주한 사람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옛 무덤 터 옆으로 구릉지 사면의 초지가 보드랍게 미끄러진다. 초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수크령의 은빛 솜털이 넓게 퍼져 있다. 볏과에 속하는 수크령은 길가나 산에서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토종 식물이라 한다. 강아지풀을 닮아 사람들은 대왕 강아지풀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뿌리가 억세고 사방으로 잘 뻗어 경사면 같은 곳에 심으면 토양유실도 방지해주는 기특한 풀이다. 꽃말은 가을사랑이다. 참 쓸쓸한 의미를 품고도 저리 환하게 흔들린다.

경사면 아래는 습지다. 기존의 둠벙 습지를 물이끼와 갈대 및 부들 등이 혼합된 다층 구조로 확대 조성했다. 온실가스를 흡수하고 기후변화에 대비해 저장능력을 높였다고 한다. 각종 풀로 뒤덮인 습지가로 데크 산책로가 놓여 있다. 길옆 배롱나무꽃들이 백일의 마지막 날처럼 피어 있다.

습지를 지나 맞은편 언덕으로 오른다. 언덕 사면에는 핑크뮬리가 두툼한 카펫처럼 깔려 있다. 10월이 돼야 절정으로 빛나겠지만 지금도 충분히 확연한 핑크다. 이제 가을만 되면 자연스레 핑크뮬리가 떠오르게 됐다. 핑크뮬리는 우리말로 '분홍쥐꼬리새'다. 꽃 이삭이 쥐꼬리를 닮은 풀이란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꽃은 한 꽃에 암술과 수술이 함께여서 외롭지 않다. 지나온 구릉 전체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폭신한 초지와 부옇게 달음질쳐 오는 솜털들의 무리, 교목의 숲속으로 파고드는 길, 숨겨진 물길을 고자질하는 듯 솟구친 버드나무들이 어쩐지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숲 너머로 익숙한 도시가 촘촘하다. 영남대 기숙사가 솟아 있고 남매지의 북단이 깨진 거울처럼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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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지와 자연마당, 인근 실내 체육관, 경산향교 등이 남매근린도시공원계획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남매지

자연마당 입구에서 도로 하나를 건너면 남매지다. 수면 가득 연잎이 짙고 한두 송이 분홍 연꽃은 고개를 꺾어 자신을 본다. 너른 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잔잔해지지만 사실 남매지는 서글픈 곳이다.

옛날에 아주 가난한 남매가 있었단다. 그들은 부모를 잃고 아버지가 진 빚을 갚기 위해 부잣집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빚을 갚지 못하면 누이는 부자의 첩이 돼야 했다. 동생은 한양에 가 벼슬을 얻어 돈을 갚을 테니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부자는 말미를 주겠노라 했다. 그러나 약속한 날이 되어도 동생은 돌아오지 않았고 누이는 못에 몸을 던지고 만다. 오후 늦게 도착한 동생은 누이의 소식을 듣고 자신도 못으로 걸어 들어갔다고 전한다. 지금의 남매지 이름은 이 전설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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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수크령. 경사지 초지의 가장자리에서 땅을 꽉 움켜쥐고 있는 기특한 우리 풀이다.

저수지 한가운데 분수대가 있다. 밤이면 화려한 조명이 켜지고 음악과 함께 분수 쇼가 펼쳐진다. 음악분수는 오는 30일까지 저녁 8시부터 3차례 가동된다고 한다. 한낮의 남매지 산책로에는 이따금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환영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고, 몇몇 사람들은 망중한으로 가로수 그늘에 잠겨 있다. 멀리 점으로 선 버드나무들은 아직 연둣빛이고, 가까운 벚나무들은 조금조금 가을로 물들어가고 있다. 이러다 돌아서면 만추겠지. 괜스레 시큰해지는 것은 아마 남매지의 전설 때문이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경산 자연마당은 경산시청 뒤에 위치한다. 대구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임당역에서 내리면 도보 10분 이내의 거리에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시청 뒤에 남매근린공원 주차장이 넓게 자리하는데 그 옆에 자연마당 입구가 있다. 경산 자연마당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한다. 주차장 앞에서 도로를 건너면 남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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