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길]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 강진규 새마을문고 대구시지부 남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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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17   |  발행일 2021-09-17 제20면   |  수정 2021-09-17 08:02

강진규회장님
강진규 〈새마을문고 대구시지부 남구회장〉

고향 집 마당 한 편의 텃밭에는 가을배추가 겨우 싹을 틔워냈다. 흙내음이 폴폴 나는 마당에 솥뚜껑을 뒤집어 달구고 '배추적(배추전)'을 지져내신다. 배고프다고 울며 보채는 동생들을 마루에 간신히 앉히고, 뜨신 김을 앞치마로 부채질해 바쁘게 몰아낸다. 심심하고 맹숭한 맛에 간장을 찍어 겨우 허기를 달랬다.

책에 나오는 어머니의 외롭고 가슴 저미는 삶은 자유로운 아버지의 삶과는 대조를 이룬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느껴지는 아버지의 위상 뒤로 어머니는 늘 외롭고 고된 삶의 주역이었고, 가시처럼 목구멍에 걸린다. 열여덟에 시조부모, 시어머니, 시동생 둘, 대가족의 가족 봉양에 '남편은 도움 되지 않는 타지 생활에 가끔 헛기침하고 손님처럼 집에 드나든다'라고, 그래도 신처럼 대한다. 참으로 가슴 아픈 구절이었다.

"굶고 자면 키 안 큰데이 국수를 먹어야 국수같이 키가 크지." 깨소금 국수 한오라기 입에 넣어주는 맛의 표현은 입안 향기를 돋우는 적절함이 넘치는 표현인 듯하다. 살뜰한 것을 씹어 꿀꺽하는 모습에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엄마의 사랑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딸에 대한 사랑의 온도는 너무 뜨겁다. 보채는 딸이 고생하는 엄마의 모습이 안쓰러운 듯 눈꺼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쪽잠을 자는 아기의 모습에서 바쁜 농촌 삶도 아련하게 다가온다. 가족들의 칭찬보단 함께 삶을 나누는 아줌마들의 풍부하고 구수한 지방 언어도 책의 풍미를 더해 주고 있다.

또한 아름다운 우리말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문장들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대목으로 잔칫집처럼 은성하다. 기분이 삽상하다. 해녀 물질하듯 기억 속의 표현들을 잘도 캐낸다. 가난 때문에 웃지 못할 간고등어 코믹한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이 책은 미완성이다. 간고등어와 헛제삿밥을 집필하지 못하고 갑작스레 이별하고 말았다.

명절을 앞두고 고향에서 먹었던 음식에 대한 추억은 더 아련해진다. 무엇인가 고파지고 마음마저 헛헛해지는 기분이 든다. 외로움에 사무쳐 봐야 배추적의 맛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심심한 맛은 희로애락을 담은 엄마의 맛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강진규 〈새마을문고 대구시지부 남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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