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아내의 목소리가 커지면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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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08   |  발행일 2021-10-08 제15면   |  수정 2021-10-08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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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1754년 10월8일 '영국 소설의 창시자' 헨리 필딩(Henry Fielding)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영국 최초의 근대소설로 일컬어지는 '조지프 앤드루스'를 1742년에, 영국 최초의 사회개혁 소설로 인정되는 '아멜리아'를 1751년에 발표했다. 대표작으로는 1749년의 '톰 존스'가 손꼽힌다.

'톰 존스'는 흔히 '톰 존스의 모험'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1963년과 1989년에 제작된 영국 영화 '톰 존스의 화려한 모험' 때문이다. '톰 존스의 화려한 모험'은 '햄릿'에 이어 영국 작품으로는 두 번째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코미디영화인데 토니 리처드슨이 감독했다.

'영국 최초의 근대소설' 운운은 현진건을 연상케 한다. 현진건은 김윤식과 김현이 '한국문학사'를 공저하면서 "한국 단편소설의 아버지"라고 평가한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선구자다. 헨리 필딩이 '조지프 앤드루스'를 21세에 발표했듯이 현진건도 '빈처'를 21세에 발표했다. 얼핏 보면 부정적인 유사점도 있다. '톰 존스'에 "아내의 목소리가 커지면 남편은 매를 들어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현진건은 지식인 소설인 '빈처'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지만 '운수 좋은 날'에는 일상적으로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을 등장시킨다. 심지어 그 남편은 죽은 아내의 시신마저 발로 찬다.

그런데도 우리는 흔히 김첨지가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으로 배운다.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설렁탕을 사기 위해 그가 죽을힘을 다해 인력거를 끌고 돈을 번다는 해석이다. 아내가 그것도 먹지 못하고 죽었으니 김첨지가 얼마나 불쌍한가! 그런 풀이는 김첨지를 힘들게 살아가는 당대 한국 민중의 표상으로 격상시킨다. 그러나 더 애통한 사람은 따로 있다. 아내는 욕설과 구타가 버릇인 남편보다 훨씬 비인간적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현진건은 일제 치하의 한국인은 남자도 여자도 모두가 처참한 존재라는 사실을 사실적으로 고발했다. '천박'한 우리들이 그저 남자에게만 초점을 맞추어 잘못 읽고 있을 따름이다.

톰 존스도 온갖 비행을 일삼는다. 탕녀 벨러스턴 부인과 놀아나다가 그 남편에게 몰려 교수형에 처해질 지경까지 된다. '톰 존스'는 겉으로는 로맨스를 담고 있는 듯하지만 본질은 인간의 치졸하면서도 끝없는 욕망을 비판하는 소설이다. 실존 세계에도 외형은 교양을 뽐내지만 실상은 탐욕과 비열함으로 가득 찬 군상들이 허다하듯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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