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정해진 순서란 없다

  •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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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04 07:54  |  수정 2021-10-04 08:02  |  발행일 2021-10-04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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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코로나19 거리 두기가 계속되면서 많은 사람이 자기 삶의 방식이나 생활 태도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반성과 성찰, 독서와 사색, 질문과 탐색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싶어진다. 최근 글을 쓰고 싶다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책을 여러 권 쓴 사람에게 물으면 먼저 많이 읽으라고 조언합니다. 어느 정도, 언제까지 읽어야 글을 쓸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을 얻게 될지 궁금합니다."

중국 고전 사서(四書) 가운데 하나인 '대학(大學)'에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란 말이 나온다. 먼저 자기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잘 다스린 후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라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기득권자가 새롭게 권력에 진입하려는 사람을 배제하거나 억압하는 말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누구도 자신과 가정을 완벽하게 다스린 후 밖으로 나갈 수는 없다. 수신제가와 치국평천하는 동시에 추진할 수밖에 없다. '소학(小學)'은 성장하는 아이들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가르치는 책이지만, '대학(大學)'은 성인의 덕성(德性)과 학문하는 자세를 가르치는 책이다. 그러니 대학에서 언급하는 이 말은 치국평천하를 도모하더라도 수신(修身)에 게으르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인문학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그 바람 덕택에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수많은 스타 강사와 베스트셀러 작가, 인기 유튜버가 탄생했다. 무수한 강의와 책이 대중의 관심과 참여를 유발했지만 수동적인 학습자도 많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문학·예술·학술 분야에서 독창적 관점을 갖지 못한 애호가 수준의 사람을 지칭하는 딜레탕트(dilettante)를 양산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모르는 것이 없지만 생산적인 대안은 내놓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말과도 통한다. 사회가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을 글로 써 보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어떤 주제를 두고 내용과 형식을 제대로 갖춘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입장이 분명해진다. 탁월한 글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래야 천박한 댓글 수준의 막말 풍토도 정화할 수 있다.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읽으면서 쓰고, 쓰면서 찾아 읽는, 능동적인 독서와 창조를 같이 해보자는 것이다. 이런 습관은 초중고 학창 시절에 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대사를 읽다 보면 신화와 역사는 동전의 앞뒤처럼 일체를 이루지만 그 경계가 모호하다. 신화가 꿈이라면 역사는 깨어있는 현실이다. 문제는 멋진 신화가 없는 곳에는 찬란한 역사도 없다는 사실이다. 먼저 꿈꾸지 않으면 읽고 쓰는 일도 생산적인 가치와 의미, 생명력을 가지기 어렵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좋은 꿈을 꾸며, 쓰고 읽는 일을 동시에 추진해 보자.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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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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