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가 만든 앱 사용 설명서 받고 어르신들 감동

  • 박진령 대구 도원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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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1   |  발행일 2021-10-11 제13면   |  수정 2021-10-11 07:59
영남일보 '2021 세대공감 공모전' 金賞 박진령 대구 도원중 교사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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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도원중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조부모를 위한 스마트폰 설명서를 만들고 있다. 〈박진령 교사 제공〉

중학교 도덕교사로 근무한 지도 언 20년이 다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인성수업은 늘 최대의 과제다. '인성교육을 지식이 아닌 실천으로 옮겨가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늘 고민하지만 이 고민에는 과연 답이 있고, 명쾌한 방도가 있을까.

한번은 복도 저 멀리서 한 학생이 뛰어오면서 나에게 도덕시험지를 보여주며 자랑을 한 적이 있다. 이번 시험에서 도덕 100점을 받았다고, 본인의 인성이 100점이라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 학생에게 수고했다 말해주긴 했지만 뒤돌아서며 나는 가슴이 답답했다. 사실 그 학생은 친구들 사이에서 험한 욕을 많이 하고, 시비를 많이 걸어서 다른 학생들과 트러블이 잦은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도덕점수를 100점 받는다고 해서 그 학생의 인성이 100점인 것은 아닌데…. 도덕이 그저 한낱 쓸모없는 지식의 조각처럼 전락하는 느낌이었다.

문제가 뭘까? 어떻게 하면 도덕이 한낱 지식으로 머물지 않고, 학생의 생각을 바꾸고 도덕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 후로 나의 도덕 수업은 항상 그 방법을 고민하는데 초점을 두기 시작했다.


정보화 격차 해소 프로그램 진행
모든 학생 참여 정성스레 만들어
아름다운 기억 한자락으로 남길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어릴 때의 기억 한 두 가지를 알게 모르게 소중히 저장하고 살아가는 듯하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그렇게 저장되어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순간마다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그 사람의 인생에 강한 풍미를 풍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름다운 기억을 품고 간다면 그건 그 사람의 인생에 있어 견고하고 단단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현재 근무교 직전 학교에서 나는 인성부장을 맡게 되었다. 대부분의 학교들은 체육대회에 조부모님들을 초대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조부모님들께서는 중학생이나 된 손자손녀의 학교 체육대회에 오시는 것을 반기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형식적인 프로그램 대신 조부모님과 소중한 시간을 나누고 아름다운 기억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을까를 고민했고, 조부모님을 학교로 초대한 밥상머리 교육, 이름하야 '할매할배의 날'을 기획하고 준비했다. 우선, 도덕수업 시간 중에 학생들은 조부모님들께 보낼 정성스러운 초대장을 만들어서 조부모님께 우편으로 발송했다. 시간은 금요일 저녁으로 결정하고 신청을 받았더니 10가정 정도의 조부모님들께서 신청을 해주셨다.

금요일 저녁, 방과 후 모두가 하교한 학교에 손자손녀 손을 잡은 어르신들이 학교 도서관으로 수줍게 등교하셨다. 학교에서 선생님 한 분이 어르신들을 위한 짧은 레크리에이션을 준비해주셔서 한바탕 웃고 난 다음 도시락을 제공해드렸더니, 한식메뉴 도시락에 어르신들이 흐뭇해하셨다. 큰 테이블에 두세 가정씩 둘러 앉아 식사를 하니 마치 가까운 이웃에게 손주손녀 자랑하시는 듯 어르신들이 자연스레 어우러지셨다. 그렇게 어르신들이 더불어 밥상머리 교육을 해주셨다. 가정마다 추구하는 가풍에 따라 가훈을 알려주기도 하시고, 가훈이 없는 가정은 2세대가 함께 가훈을 정하기도 했다. 그렇게 정해진 가훈을 알려주면 미리 섭외된 캘리그라피 강사님께서 식사시간 동안 멋진 필체로 가훈액자를 담아주셨다. 식사를 마치고는 시청각실로 이동해서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했다. 조부모님들께서는 손주손녀와 영화를 보러 간 경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낯설어하시면서도 연신 함박웃음을 보이셨다.

조부모님들께서는 나의 손을 꼭 붙잡으시고는 감사하단 인사를 얼마나 많이 하고 가시는지 민망하기도 했다. 손주손녀에게 부담이 될까 만나자는 소리도 못했는데, 더 늦기 전에 이렇게 좋은 시간 보낼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그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본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어르신들의 표정과 조부모님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아기로 돌아간 양 감싸여있던 학생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지금은 다른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이번에는 몇몇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보다 모든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수업에서 의미 있는 일을 계획해보고 싶었다. 따뜻하고 의미 있는 수업이나 프로그램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에 '세대 간 정보화 격차 문제'가 떠올랐다. 젊은 세대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휴대폰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잘 다루지만 이러한 정보기기를 다루는 것이 낯설기만 한 어르신들은 휴대폰 기능 하나 쓰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학생들과 수업 시간에 본인들의 할머니·할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정보화 기기의 기능을 설명하는 리플릿(설명서) 만들기 수업을 진행해보기로 했다. 마침 5월8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진행하여 그 의미를 더해보았다.

학생들이 제작한 정보화기기 리플릿의 주제는 다양했다. 알람 설정, 문자보내기 같은 기본적인 기능부터 배달앱에서 음식주문하기, 삼성페이로 결제하기, 인터넷뱅킹 사용하기, 무인계산기 이용하기 등 정말 필요한 기능들을 알려주는 다양한 주제의 리플릿들이 완성되었다. 학생들은 본인들이 만든 리플릿을 할머니·할아버지께 직접 보여드리기도 하고 카톡으로 보내드리기도 했다.

그걸 받으신 조부모님들께서는 내용을 다 이해는 못하셨다하더라도 손자손녀가 당신을 위해 만들었다는 그 의미만으로 기뻐하셨고, 익명의 한 분은 번호를 어찌 아셨는지 나에게 전화하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이렇게 또 하나의 아름다운 기억을 남기게 되어 기뻤다. 학생에게도, 어르신들께도, 교사인 나에게도 아름다운 기억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각자의 인생에 있어서 따뜻하고 굳건한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나는 학교의 인성프로그램이나 효행 장려 프로그램들이 보여주기식이나 형식적인 행사로 수치적으로 기록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기억 한 자락으로 남아 학생의 생각을 바꾸고, 어느 순간 한번에라도 행동을 변화하게 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교육이 되기를 꿈꾼다. 그것이 내가 도덕수업에서 도덕교사로서 학생들을 위해 준비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기에 오늘도 고민한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들을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고민들이 필요하지만 그 감동과 인성의 변화는 그러한 수고를 감내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지금 당장의 변화가 아니라 할지라도 학생의 살아가는 동안 기억 한 편에 머물면서 갈등의 순간 무의식적인 힘을 발휘하는 그런 아름다운 기억이 되어주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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