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비커밍 제인' (줄리안 재롤드·영국 외·2007, 2020년 재개봉)

  • 김은경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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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5   |  발행일 2021-10-15 제39면   |  수정 2021-10-15 09:30
제인 오스틴의 인생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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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해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비커밍 제인'은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사랑한다는 작가 제인 오스틴의 이야기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모두 영화나 TV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대표작 '오만과 편견'은 10번 이상 만들어졌다. 19세기 여성 작가의 소설이 왜 이토록 널리 사랑을 받을까.

영화는 작가 지망생 제인 오스틴과 가난한 변호사 톰 리프로이의 사랑 이야기다. 리젠시 시대의 풍습과 의상, 자연 풍광이 무척 아름답게 담긴 영화다. 존 스펜서의 '제인 오스틴:세상 모든 사랑의 시작과 끝'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제인이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톰 리프로이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성숙해가는 이야기, 아픈 이별을 하고 작가로 거듭나는 내용이다. 제인 역 앤 해서웨이와 톰 역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가 매력적이고 조화롭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영화지만 사랑 이야기에 치중한 것이 조금 아쉽다. 인간 제인 오스틴을 좀 더 알고 싶기 때문이다. 생전에 제인은 언니 카산드라와 엄청난 양의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남자 형제들 틈에 자라 다분히 말괄량이 기질이었다는 제인은 언니와의 편지에서 모든 것을 다 털어놓았던 것 같다. 제인 사후에 카산드라는 그 편지들을 모두 불태웠다. 편지들이 남아있었다면 인간 제인 오스틴의 모습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아마도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를 많이 닮았으리라. 영화를 보고 '오만과 편견'을 다시 읽으려고 찾았다. 책장을 뒤져봐도 없어 서울 사는 딸에게 물으니 가져갔다고 한다. 코로나 탓에 여행을 못 해 독서 시간이 늘었다는 아이다. 젊은 세대가 제인 오스틴을 찾아 읽는 것이 반갑다. 제인 오스틴의 생명력은 이렇게 길다.

연휴에 다산초당에 다녀왔다.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책을 썼던 다산 정약용. 그의 흔적을 따라 좁고 험한 산길을 오르노라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영화 '비커밍 제인'을 보며 제인 오스틴과 다산이 비슷한 시기인 19세기를 살았다는 게 흥미로웠다. 다산은 유배 생활 동안 수백 권의 책을 썼고, 제인 오스틴 역시 집안 구석의 작은 탁자에서 대부분의 소설을 완성했다. 날개 꺾인 새처럼 한탄하며 살 수도 있는 인생인데, 둘 다 그러지 않았다. 후대에 와서 최고의 학자와 소설가로 평가받는 위치를 생각해보면 다산의 초당도 제인의 탁자도 눈물겨울 만큼 소박하다. 그들의 정신세계만은 우주만큼이나 드넓게 유영했으리라. 그들의 작은 공간을 보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 못하겠다. 어쩌면 우리는(나는) 너무나 풍요로운 시대에 너무 많은 불평을 달고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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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시인·심리상담사

톰 리프로이와 아픈 이별을 하고 제인 오스틴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나이 든 엄마와 역시 독신인 언니와 작은 집에서 살며 변변한 수입도 없이 거실 한구석 탁자에서 소설을 쓰던 제인 오스틴을 생각한다. 영화 속 제인이 말한다. "제 주인공들은 여러 갈등을 겪은 후 원하던 모든 것들을 얻게 될 거예요."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소망을 소설에 담았다. 이름 없는 작가로 조용히 글을 쓰며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했던 그녀의 비밀스러운 기쁨을 생각해본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과 영화가 어울리는 계절이다.
김은경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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