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길 안동 지례예술촌장 "묘비문, 후손이 읽을 수 있어야" 안동서 한글 가로쓰기로 파격 전환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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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5   |  발행일 2021-10-15 제35면   |  수정 2021-10-15 08:47
훈민정음 해례본 안동 광흥사서 발견
퇴계의 도산십이곡 한글로 쓰여있어
"안동=한자 운운, 시대착오적인 편견"
양성평등시대, 父母 행적 함께 새겨
"비석도 언젠가는 박물관 유물 될 것"
시대에 맞는 종가·전통문화 계승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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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길 안동 지례예술촌장이 지난 9일 한글날 기념 문중 비석을 한데 모아놓은 비림에서 한글 가로쓰기로 제작한 부모 묘비 제막식을 거행했다. 김 촌장은 "후손들이 알아보기 좋아야 그게 시대에 부응하는 비석"이라면서 한글 가로쓰기 이유를 밝혔다. 김 촌장의 친손자가 비석 앞에서 증조부모의 지난 행적을 찬찬히 읽어보고 있는 광경이 많은 걸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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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 김방걸의 13세손인 김원길 안동 지례예술촌장이 지난 9일 의성김씨 문중 비림에서 일가친척을 모신 가운데 한글 가로쓰기로 제작한 부모 묘비 제막식을 하고 있다.

시월 상달, 이 무렵 전국의 각 문중에선 일제히 선영에서 조상을 뵙는 묘사를 봉행한다. 특히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서는 이 기간을 각별한 맘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 상례~기제사~묘사는 오직 한자 전용을 불문율로 삼는다. 그런데 거기에 반기를 든 분이 나타났다. 안동 지례예술촌 촌장 겸 시인인 김원길(79·사진)이다. 그는 조선 숙종 때 대사성을 지내고 한때 영남 남인의 종장 격으로 불렸던 의성김씨 지촌 김방걸의 13세손으로 종택을 지키며 종가문화 및 전통문화 현대화에 앞장서고 있다.

그런 그가 지난 9일 한국 유림사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일을 저질렀다. 한글날을 맞아 지촌 종택이랄 수 있는 지례예술촌 문중 비림에서 자신의 부모 묘석 비문을 직접 짓고 그걸 한글 가로쓰기로 새겨넣고 일가친척을 모신 가운데 묘비 제막식까지 한 것이다. 묘비의 앞뒤에 아버지와 어머니 제문을 한 돌에 새겨넣은 건 무슨 이유일까? 그가 답을 보내왔다.

김원길

원래 묘비는 묘 앞에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시제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합동제단소'에 비를 세웠다. 보통 제단소에는 표석만 세우는 것이 상례인데 그가 비를 세운 것은 이미 역대 조상의 묘비를 산에서 옮겨와서 '비림(碑林)'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높고 험한 산속에 흩어져 있는 묘소를 둘러볼 수 없고 거기 비석들의 문장과 글씨와 내용이 귀중한 것이어서 이를 옮겨와서 제단의 표석을 대신하고 여기에 자손들이 모여서 시제를 올려 왔던 것이다.

이번 비석은 갓석이 없는 오석(烏石)에 한글을 가로로 쓴 것이다. 앞면에는 아버지의 비문, 뒷면에는 어머니의 비문을 띄어 쓰지 않고 합각(合刻) 했다. 한글 가로쓰기를 시도한 것은 누구나 읽기 쉽게 함이다. 또한 뒷면에 어머니 비문을 새긴 것은 따로 세우는 데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며 양성 평등시대에 어머니의 신분과 행적도 드러내 드리는 게 옳다고 여겼다. 띄어쓰기를 않은 것은 좁은 비면에 많은 글자를 넣기 위함과 빈자리를 없애고 비면 구도를 살리기 위함이다.

글자꼴도 시대에 맞게 컴퓨터체로 새겼다. 행사는 의례를 간소화하기 위해 고유제와 제막식을 겸했으며 부대행사로 사진가이기도 했던 고(故) 김구직 선생의 '옛날사진 전시회'도 가졌다. 수몰로 사라진 옛 마을 풍경과 고향 사람들의 얼굴이 담긴 사진들이 행사를 더욱 빛나게 했다.

"선생님이 너무 앞서 나가는 건 아닌지?"

"앞으로 백 년 후면 지금 쓰는 한글도 못 읽을 거예요. 우리가 백 년 전 한글을 못 읽어 내듯이. 급변하는 세태를 따라잡지도 못하면서 도리어 옛날로 돌아가려는 사람이 많아요. 저 비석들도 지금은 제사용이지만 언젠가는 박물관용이 될 거예요. 부모의 비문도 이젠 자식이 쓸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어요."

안동은 정신수도이니 한문 전용을 해야 하고 그래서 안동역을 한글 대신 한자로 적어놓은 걸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안동은 한국 내방가사의 1번지고 특히 훈민정음 해례본도 안동 광흥사에서 발견됐고 퇴계 이황의 도산십이곡 또한 한글이죠. '안동=한자' 운운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해요."

전통문화 운동가이기도 한 그는 1975년 서울에서의 출세를 버리고 임하댐에 수몰될 세거지를 새로운 방향으로 살리기 위해 서둘러 귀향한다. 그가 그렇게 해서 만든 지례예술촌은 관의 도움을 일절 받지 않고 오직 개인의 힘으로 만든 것이기에 자부심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글=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사진=김원길 지례예술촌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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