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수필집 펴낸 류경자…"풍산류씨 가문의 만능 재주꾼, 나는 지금도 반란을 꿈꾼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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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5   |  발행일 2021-10-15 제35면   |  수정 2021-10-15 08:46
서예가이자 수필·민화가로 활동
"서애 15세손…영광이면서 부담"
아녀자로서의 삶과 황혼의 통찰
가족들도 몰랐던 진솔한 이야기

수필책
타고난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며 살아오면서 안동 하회마을 풍산류씨 명문가 딸로 산다는 것의 보람과 남모르는 신산스러움 등 그만의 삶의 뒤안길 스토리를 담은 두 번째 수필집 '내 마음의 바지랑대'를 펴낸 소림 류경자. 그녀는 1976년 서예가로 입문했고 최근 수필과 민화에 올인하면서 살고 있다.

서애 류성룡의 얼이 깃든 안동 하회마을. 풍산류씨의 시조인 류종혜가 고려 말에 풍산에서 하회마을로 옮겨와 터를 잡았다. 문화재급 고가인 북촌댁, 양진당, 충효당 등이 이 문중이 얼마나 유서 깊은지를 암시해준다. 류씨 문중 관계자가 본관 확인을 할 때 반드시 치르는 통과의례가 있다. 자신의 성을 자꾸 '유'로 적는 걸 지적해 주는 절차다. 그리고 유명 시인 류안진이 풍산류씨로 잘 못 알려진 것도 '전주류씨'로 바로 잡아준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 마을의 혈통을 가진 자손들은 대처에 나가서도 조상한테 누가 될까 싶어 항상 행신을 각별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류경자. 쟁쟁한 문중이 그를 에워싼다. 영광이면서 큰 부담이기도 하다. 서애의 15세손이고 외가는 정승 열셋, 왕비 셋을 낳고 청송 심부자로 알려진 송소고택, 시댁은 취금헌 박팽년을 낳은 순천박씨 가문이다.

그런 그가 서예를 딛고 10여 년 전 수필·민화가로 건너와 최근 두 번째 수필집 '내 마음의 바지랑대'를 출간했다. 이 책은 남존여비가 기조 문화였던 전통사회에서 아녀자로 살아낸다는 것의 신산스러움, 차마 친정과 시댁 어른은 물론 자식한테까지도 쉽게 말할 수 없는 행간에 감춰진 삶의 후미진 얘기를 오롯하게 쏟아냈다.

6·25 때 부모를 여의고 하회마을로 피란 온다. 안동여고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결혼한 뒤 23세부터 대구에서 터를 잡는다. 1976년 서예계로 다가선다. 당시 서예계는 남성 독점 시대였다. 심제 정계조, 혜정 류영희 연사 이영순 등과 함께 대구 여성서예계 1세대로 자릴 잡는다. 서단에 들어갔을 때 남석 이성조가 대구서예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녀는 한글서예 대신 더 어려운 한문 서예에 도전했다. 갈 길이 험난할 수밖에. 처음으로 정암 이원식을 사부로 모신다. 그로부터 '소림(沼林)'이란 아호를 얻는다. 이후 남편 전근 때문에 서울, 광주, 청주 등지를 10년 정도 떠돌았지만 서예는 계속되었다. 서울에서는 초민 박용설, 광주에서는 전남대 장석원 교수로부터 미술사와 문인화 등을 배운다. 서예 5체를 섭렵하면서 국전에 세 번 입선한다. 2008년 동아쇼핑 내 동아미술관에서 '자서전 출판 기념전'이란 부제를 달고 생애 첫 개인전을 가졌다. 서예 기본 5체를 비롯 육조체와 한글까지 7가지 서체를 전시했다. 서애 류성룡의 누정시를 여러 체로 표현했다. 첫 수필집은 '연필로 그린 자화상', 자전적 수필이다. 연필로 삽화를 그려 책에 삽입했다.

이번 수필집에는 민화를 삽입했다. 서예를 하다가 어떻게 민화로 건너왔을까? 그건 전통서예의 한계 혹은 지루함 같은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현대서예에 잠시 고개를 돌렸다가 수필가로 변신했고 2009년부터 민화의 세계로 들어선다.

그녀는 재능이 무궁무진하다. 풍산류씨 가문의 정서와 사뭇 다르다. 책에서 '나는 지금도 반란을 꿈꾼다'고 했다. 하지만 급격히 나빠지는 시력, 최근 몸이 안 좋아 병원 신세도 졌다. 삶보다 죽음의 날이 더 구체적으로 다가서는 것 같았다. 그 심사가 책에 담겨 있다. 유품 정리는 유족의 몫이 아니라 본인의 권리라는 것, 그리고 사람은 사람을 떠나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구절이 긴 여운으로 다가선다. 2남1녀의 자식이 그에게 6명의 손자를 안겨주었다.

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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