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 기자의 '지구촌 산책' .12] 밀라노'라 스칼라' 오페라극장, '장미-토마토' 관객 선택에 따라 오페라 운명 갈렸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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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8   |  발행일 2021-10-18 제21면   |  수정 2021-10-18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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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 오스트리아 빈국립오페라극장, 프랑스 파리오페라극장과 함께 세계 3대 오페라극장으로 꼽히는 이 극장은 오페라의 메카로 통한다.

지금 대구에서는 제18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열리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 열리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오페라축제로, 오페라 애호가들의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외국 오페라 작품들을 무대에 올릴 수가 없어 한 해 건너뛰었다. 올해도 코로나19 상황이 계속돼 제대로 된 국제행사가 되지 못해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오페라 애호가들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는 22~23일에는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가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현재로서는 유일한 국내 오페라극장이다. 2003년에 개관, 국제오페라축제를 비롯해 오페라 제작과 공연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면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어떤 족적을 남길지 기대된다.

200여년 역사의 세계 3대 오페라극장
밀라노 유력인사들 의기투합해 건립
전속 오케스트라·합창단·발레단 갖춰
푸치니 '나비부인' 등 초연으로 유명
리카르도 무티 등 세계적 지휘자 활동

관객 반응따라 작품 성공여부 판가름
만족하면 장미 실망땐 토마토 투척해


스칼라극장(19세기)
19세기의 라 스칼라 모습.

이탈리아에서 본격적으로 생겨나고 발달한 오페라는 서양의 대표적 예술 장르로,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 오페라의 흥미로운 역사와 많은 일화를 담고 있는 대표적 극장이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라 스칼라(La Scala) 극장이다.

오페라 본고장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극장인 라 스칼라 극장은 오스트리아 빈국립오페라극장, 프랑스 파리오페라극장과 함께 세계 3대 오페라극장으로 꼽힌다. 스칼라 극장은 세계 오페라의 메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200여 년에 걸친 찬란한 전통과 영광을 지닌 극장이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예술가들은 물론 세계의 위대한 오페라 성악가들이 그 무대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 주었다.

스칼라 극장은 밀라노의 중심가에 있다. 밀라노 대성당 옆, 1867년에 건축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의 아케이드 통로를 따라 고급상점들을 구경하며 계속 걸어 나가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상이 있는 스칼라광장이 나온다. 그곳에 스칼라 극장이 있다. 다빈치 동상 오른쪽에는 1558년 가레아초 아레시가 설계한 마리노 궁이 있는데, 이곳은 1866년 이후 밀라노시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스칼라 극장은 밖에서 보기엔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건물이다. 모르는 사람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하다. 그리 크지도 않은 건물이다. 나 역시 그냥 지나쳤으면 기억에도 남지 않은 건물이었다. 일행이 이야기해 주어서 그 유명한 스칼라 극장인 줄 알았다.

◆오페라의 메카

1776년 화재로 밀라노의 주요 극장이던 테아트로 레지오 두칼레가 소실되었다. 밀라노의 유력 인사들이 새로운 극장을 짓기로 뜻을 모으고 설계를 공모, 당시 이 도시를 통치하던 오스트리아의 여제(女帝) 마리아 테레지아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1778년 마침내 새 극장이 개관하게 되었다. 극장 건설을 위해 철거했던 산타 마리아 알라 스칼라 성당의 이름을 반영해 '누오보 레지오 두칼레 테아트로 알라 스칼라'로 명명했다. 이후 '테아트로 알라 스칼라'로 줄여 부르다, 지금은 '라 스칼라'로 부르고 있다.

1778년 8월 살리에리의 오페라 '에우로파 리코노시우타(Europa Riconosciuta)'를 개관 기념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다. 벨리니의 '노르마', 베르디의 '나부코', 푸치니의 '나비부인'을 비롯한 수많은 오페라가 이곳에서 초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 공습으로 파괴되었으나, 전후에 재건돼 1946년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재개관 기념 콘서트로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당시 소프라노 레나타 테발디가 솔로로 무대에 올라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2002년 1월~2004년 11월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이 이뤄졌다. 2004년 말의 재개관 때는 226년 전 개관 기념작으로 공연된 살리에리의 '에우로파 리코노시우타'를 다시 무대에 올렸다.

부속기관으로는 전속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발레단 등이 있다. 박물관도 있다.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정명훈이 2000년 이후 리카르도 무티, 다니엘 바렌보임, 발레리 게르기예프, 파비오 루이지, 리카르도 샤이 등과 함께 주요 객원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극장의 수용인원은 3천600명 정도. 1층의 객석을 제외하고는 거의 박스석이다. 박스석은 기본적으로 6명이 한 방에 들어가서 보는 구조인데 6층으로 되어 있다. 스칼라 극장은 지휘자와 성악가는 물론 연출가에게도 꿈의 무대다. 800여 명의 스태프가 일하고 있고, 1년에 오페라와 발레 등 300회 정도의 공연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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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칼라스와 라 스칼라

스칼라 극장은 수많은 명작의 초연 극장이라는 점도 큰 힘으로 작용하지만, 출연 성악가의 명성이 아니라 오로지 실력 위주로 작품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나는 특유의 공연문화가 스칼라 극장을 오페라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냉정한 관객은 공연 중 장미꽃과 토마토를 들고 있다가 실력이 형편없는 공연에는 어김없이 토마토를 던지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오페라의 여신'으로 불리는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1923~1977년)가 혜성처럼 나타나 빼어난 실력으로 다양한 오페라 주역을 소화하며 스칼라 극장의 명성을 더욱 높였다. 1950년 칼라스는 병이 난 소프라노 레나타 테발디의 대타로 스칼라 극장에 입성해 놀라운 성공을 거둔다. 배역은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의 주역 아이다 역이었다. 당시 테발디는 스칼라 극장의 여왕이었다. 그런데 테발디가 아이다 공연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쓰러졌고, 극장 측은 서둘러 대역을 쓰기로 했다. 테발디의 대타로 등장한 칼라스는 당시 무명이었지만, 아이다의 감정을 너무나 잘 표현하는 목소리로 관객을 열광하게 했다. 작가 헤밍웨이는 '황금빛 목소리를 가진 태풍'이라고 칭송했다. 공연을 본 관객은 "새로운 디바가 등장했다"라며 환호했다.

1951년에는 스칼라 극장에서 '노르마'를 노래했다. 칼라스는 너무 잘해서 무서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는 1950~1960년 스무 편 이상의 오페라를 부활시켰다. 모든 오페라의 공연에 영향을 미쳤고, 많은 오페라 가수들의 눈을 높였다. 칼라스 시절의 스칼라 극장 음반들은 다른 오페라 극장의 기준이 되었다.

한국인으로는 바리톤 김동규가 1991년 베르디 국제성악콩쿠르 1위 경력으로 동양인 최초로 스칼라 극장 주역 가수를 맡은 적이 있고, 소프라노 홍혜경과 테너 이정원이 그 무대에 섰다. 경북대 출신으로 국내외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테너 권재희도 스칼라 극장에서 발레리 게르기예프, 핀커스 슈타인베르크, 구스타보 두다멜 등 세계적 지휘자들과 함께했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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