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마음을 이야기하다

  • 곽호순 곽호순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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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9   |  발행일 2021-10-19 제15면   |  수정 2021-10-19 07:44
수많은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사회
가치 있는 변화 일으키는 소통으로
사회에 좋은 영향 미치며 살고 싶어
곽호순 (곽호순 병원장)

물푸레나무 어린 가지를 곱게 꺾어다가 물에 담가 놓으면 물이 푸르게 물든답니다.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 그래서 물푸레나무라고 한답니다. 한자로는 수청목(水靑木)이라고 부른답니다. 물푸레나무 가지가 물을 푸르게 물들인다면 그것은 물푸레나무가 물에 변화를 준 것이거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관계는 변화를 기대하니까요. 물푸레나무는 물과 친해지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푸른 마음으로 물에게 변화를 준 것이지요. 물푸레나무는 물에 좋은 변화를 준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나쁜 변화라면 물이 푸르게 물들지는 않았겠지요. 푸른 물로 물드는 것을 보면 물도 물푸레나무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자 애를 쓴 것이 분명합니다.

물푸레나무의 푸른 능력도 원래 물로부터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물을 다시 푸르게 변화시키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관계라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요. 나는 누구에겐가 그런 변화를 줄 수 있는 관계가 될까 생각해 봅니다.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오늘도 많은 관계들과 스쳤지만, 나는 어떤 사람에게 한 번이라도 변화를 줄 수 있는 좋은 관계를 맺은 적이 있었는지 나에게 물어봅니다. 그러므로 나는 물푸레나무보다 못났지요. 물푸레나무, 물을 푸르게 물들이게 하는 나무. 참 이름 값하는 나무입니다.

어제 수박 한 통을 샀습니다. 사과는 한 알, 포도는 한 송이, 배추는 한 포기라고 부르지만 수박은 그렇게 쩨쩨하게 불리지 않습니다. 수박은 작은 것도 '통'으로 부릅니다. 저는 어제 저랑 잘 통할 놈으로 수박 한 통을 샀습니다. 수박과 어떻게 통했냐면요, 제가 우선 수박에다 "똑똑" 노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수박 안에서 "통통"하면서 대답을 하는 거예요. 맑고 청량하고 기분 좋은 소리로 "통통"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렇게 잘 통한 수박 한 통을 사서 집으로 오는데 그 크고 둥글고 거대한 수박 한 통을 안고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지구 한 통을 안고 오는 기분이랄까. 내 으쓱해하는 모습을 아들놈이 봐줬으면 하면서. 집으로 와서 이리저리 살펴봐도 둥근 수박에는 어디 대답을 할 만한 공간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을 대 봤지요. 순간 쫙 하고 벌어지면서 아하, 눈알이 까만 수박 씨앗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까만 수박 씨앗들. 마치 옛날 보리밥 광주리 안에서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눈알을 반짝이던 생기 있는 생쥐 눈빛 같은, 까만 별 같은 수박 씨앗들, 그들이 내 노크에 대답을 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알게 된 것이 큰 소득이지요. 그래서 저는 수박을 한입 가득 베어 물고는 함부로 씨앗을 뱉지 않았습니다. 특히 크고 까만 씨앗들을 정성 들여 모아서는 뒷산 산자락 남의 텃밭 고추나무 옆에 곱게 심어 놓았습니다. 혹시 압니까. 수박 덩굴로 자랄지. 참 어리석은 일을 했다고 아내에게 지청구를 먹었지만 저는 심어 봤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씨앗을 심어 봤습니다. 그 까만 수박씨들을, 나하고 통했던 그것들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던 통 큰 수박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해 보면서.

수박씨를 심으면서 나는 사람들과 어떤 방법으로 소통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내 노크에 대답해 줄 그런 사람 한둘만 있어도 세상 다 얻은 것 같을 텐데, 나는 누군가의 목말라 하는 소통에 아무것도 못 하고 있지나 않은지를 생각해 봤습니다.곽호순<곽호순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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