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짐승과 인간

  • 백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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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21   |  발행일 2021-10-21 제23면   |  수정 2021-10-21 07:17

1630년 조선 인조 시대에 경북 선산군 해평면 산양리(현 구미시)에 거주하면서 우리(郵吏·집배원)로 일하던 노성원이라는 사람은 황구를 길렀다. 하루는 노씨가 이웃 마을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 귀가하다 해평면 일선리 월파정 북쪽 길가에서 잠이 들었다. 때마침 들불이 나 주인이 위험에 처하자 황구는 300m가량 떨어진 낙동강으로 달려가 몸에 물을 묻힌 뒤 주인의 주위에서 뒹굴기를 반복하다 탈진해 죽었다. 잠에서 깨어난 주인은 자신을 구하고 죽은 황구에 감동했고 관에 넣어 무덤을 만들었다. 선산 의열도(義烈圖) 의구전(義拘傳)이 전하는 의구총(義拘塚) 이야기다. 의구총은 경북도 민속자료 제105호다. 1962년 무덤이 도로 부지에 편입되자 마을 뒷산에 옮겨져 있던 것을 1994년 낙산리 철장 마을에 새로 단장했다. 

비슷한 시대에 선산군 산동면 인덕리에 살던 농부 김기년이 암소로 밭을 갈던 중 호랑이가 덤벼들었다. 주인을 대신해 호랑이와 맞서 싸우던 암소 덕분에 주인은 목숨을 구했으나 상처가 덧나 며칠 만에 죽었다. 그는 죽기 전에 "절대로 소를 팔지 말고 수명이 다해 죽으면 내 무덤 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주인이 죽자 암소는 먹이를 먹지 않고 사흘 만에 따라 죽었다. 1685년 선산 부사는 화공에게 의우도(義牛圖)를 그리게 하고 소의 무덤을 만들어 줬다. 무덤 뒤편에는 화강암에 그린 의우도와 비석이 있다. 이것이 산동면 인덕리의 의우총(義牛塚)이다. 

칠곡군 석적면에는 비슷한 내용의 의견총(義犬塚), 구미시 선주원남동에는 주인이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상여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따라 죽었다는 의우총이 있다. 주인을 향한 헌신과 의리를 보인 동물은 죽어서 무덤에 매장되고, 후세에게 배움의 기록으로 남을 정도로 웬만한 의인(義人) 대접을 받는다. 잔인하거나 야만적인 사람을 경멸할 때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라고 한다. 동물 중에서 개의 새끼에 비유하는 욕보다 강도 높은 욕설이면서 결코 들어서는 안 될 치욕이다. 짐승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의구총과 의우총 이야기를 곱씹어봐야 한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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