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대선 점령한 레닌식 정치문법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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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21   |  발행일 2021-10-21 제22면   |  수정 2021-10-21 07:20
적에 이로우면 내게 해롭나
대선판 궤변·네거티브 난무
토론회서도 거짓말·오리발
면후심흑 정치인 경계해야
국민의 집단지성 작동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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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블라디미르 레닌을 수식하는 관형어는 많다. 마르크스주의 실천가, 러시아 공산당 창설자, 소비에트연방 창립자, 국제노동운동 지도자, 사회주의 실패의 원흉…. 1917년 2월 러시아 혁명 후의 권력다툼에서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를 누르고 임시정부를 전복시킨 볼셰비키의 두령(頭領)이기도 하다. 계급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주역 레닌이 교조처럼 섬긴 경구가 있다. "적에 이로운 건 내게 해롭고 적에 해로운 건 내게 이롭다." 정적을 가차 없이 제거한 레닌 율법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 우리 대선 주자들도 레닌의 정치문법을 터득한 양 사뭇 적대적이다. 대통령이 되면 상대를 감옥 보내겠단다. 마타도어와 네거티브를 마다않는다. 거기다 안하무인에 오불관언까지.

#후흑의 정치학

후흑(厚黑)은 두꺼운 얼굴 면후(面厚)와 시커먼 속마음을 뜻하는 심흑(心黑)의 합성어다. 1912년 이종오가 쓴 '후흑학'이 중국에서 출간되자 온 대륙이 들끓었다. 후흑학 열풍은 중국인의 국민성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래 제왕학에 기초한 '중국 통치학'이란 평가가 있지만, 기실 후흑학은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이다.

일부 대선 후보의 궤변과 거짓, 무뢰(無賴)와 기이한 행태는 영락없는 후흑이다. 어쩌다 항문침 논쟁까지 벌어지나. TV토론에서 오리발을 내미는 언행도 다반사다. 선거에 영향을 주는 거짓말은 엄연히 공직선거법 위반인데도 말이다. 범죄 연루 의혹을 받는 후보의 높은 지지율도 불가사의다.

#정치 부족주의

에이미 추아 예일대 교수는 저서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인종이 미국의 빈민을 갈랐고 계급이 미국의 백인을 갈랐다"고 진단했다. 탈레반 세력인 파슈툰족을 비롯해 14개 부족으로 구성된 아프가니스탄. 분열과 비극의 단초는 정치 부족주의였다. 우리 정치판도 부족주의 성향이 강고하다. 정당 색깔과 계파가 피아(彼我)를 구분 짓는 잣대다. "홍 선배님, 우린 깐부 아닌가요?" 윤석열 후보의 이 말, 부족주의에서 발로되지 않았을까. 민주당 이낙연 후보 측의 경선 불복 소동도 정치 부족주의가 빚은 촌극이다.

진보와 보수의 극단적 진영논리 역시 레닌식 정치문법과 부족주의의 산물이다. 유권자 파벌주의도 심각하다. '대깨문' 외에 이제 '대깨명' '대깨윤'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동질주의와 집단본능에 천착하는 부족주의는 정치 진화의 저해 요인일 뿐이다. 우두머리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들쥐 레밍 무리의 말로를 보라.

#역대급 비호감 대선

내년 3·9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선거다. 호감도가 더 높은 후보는 단 한 명도 없다. 윤석열·이재명 두 유력 후보의 비호감도가 특히 높다. 아예 유권자들이 '최선'을 선택할 수 없는 구도다. 어쩌면 비호감도는 선거 판세를 가늠하는 가장 정확한 지표일지 모른다. 지난해 4·15 총선서 참패한 미래통합당도 선거 막판에 비호감도가 치솟았다.

마키아벨리는 "저열한 군중은 저열한 정치에 끌린다"고 말했다. 의역하면 면후심흑 정치인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거짓부렁 후보·뻔뻔한 후보를 솎아내라는 메시지다. 다행히 우린 사변적(思辨的)이며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춘 '깨시민'이 절대 다수다. 종국엔 국민 집단지성이 작동하리라 믿는 이유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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