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아' 다르고 '어' 다르다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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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19   |  발행일 2021-11-19 제15면   |  수정 2021-11-1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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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1598년 11월19일 세종대왕과 더불어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국민적 추앙을 받는 충무공 이순신이 세상을 떠났다. 장소는 남해도 앞바다 노량으로, 본국으로 철수하려는 일본군을 무찌르던 중 전사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전투가 급하고 신중해야 할 시점이니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戰方急愼勿言我死)"였다. 이 유언은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식으로도 많이 전파돼 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유(類)의 제목을 단 책도 여러 권 발간되었다. 말만 인터넷의 바다에 떠도는 수준이 아니라 책명으로까지 승격된 것이다. 이는 사실과 너무나 다른 표현이 사람들을 혹세무민하고 있는 형국이다.

어째서 혹세무민인가? 지금부터 아득한 2천500여 년 전에 손자는 "적을 속이려면 우리 편부터 속여야 한다. 그래야 기밀이 유지된다"라고 말했다. 천하의 이순신이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러일전쟁 일본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나를 (나폴레옹에 맞서 영국을 구한) 넬슨 제독에 견줄지언정 이순신과 비교할 수는 없다"라고 했던 바로 그 이순신 아닌가!

이순신이 참으로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고 유언했다면 이는 당신의 명예를 해치는 발언으로 역사에 기록될 터다. 충무공의 죽음을 알면 조선 수군의 사기가 저하되고, 함께 전투 중인 중국 군대에도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일본군도 그것을 간파 못할 수준은 아니다. 노량해전에 참전했던 명나라 도독 진린도 전투가 끝난 뒤에야 이순신의 전사를 알았다. 충무공의 전사는 당시 최대 최고의 1급 군사기밀이었다. 충무공의 죽음을 알았던 사람은 정말 극소수였다. 아군 중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결국 그것은 적에게 노출되는 법이다.

플로베르는 "한 가지 생각을 적확하게 나타내는 말은 하나밖에 없다"라는 취지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로 유명하다. '戰方急愼勿言我死'는 한역문이므로 이순신 본인의 말은 아니다. 이 유언은 어떻게 우리말로 옮겨야 진의가 온전히 전달될까? '난중일기'를 찾아보면 답을 알 수 있을까. 하지만 '난중일기'에 나올 리 없다. 이날 이순신은 일기를 쓰지 못했다. 이 유언은 류성룡의 '징비록'에 기록돼 있다. 이순신도 류성룡도 가슴이 찢어졌던 이 한마디 말, 누구도 함부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 석가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지만 '나'는 세상의 미물일 뿐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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