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장면들…사회 뒤흔든 사건 중심서 손석희가 직접 하고 싶던 말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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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19   |  발행일 2021-11-19 제15면   |  수정 2021-11-19 08:13
세월호·국정농단 등 거치며 남긴 기록
개인적 에피소드와 고민·소회도 담아

손석희_팽목항
2016년 4월26일 팽목항에서.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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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지음/창비/390쪽/1만8천500원

'1984년 초 MBC에 입사했을 때, 사내 잡지에서는 신입사원의 장래희망을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거기에 실린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MBC 평양지국장.'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 대표 언론인 손석희'라는 닉네임을 얻은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다. JTBC '뉴스룸' 앵커석에서 내려온 지 1년10개월 만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사회를 뒤흔든 사건들의 중심에서 그가 직접 하고 싶었던 말들을 꺼냈다. '뉴스룸' '100분토론' '손석희의 시선집중' 등 대표적인 뉴스·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저자는 10년 이상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으로 손꼽혀왔다. 특히 JTBC 보도부문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2013년 이후 세월호참사와 국정농단 등 한국사회를 뒤흔든 사건의 핵심 보도를 주도하면서 주목받았다.

이 책에는 그 변화의 시간을 되짚으며 그가 남긴 기록이 담겨 있다. 200일 넘게 세월호참사 현장을 지킨 이야기, 세상을 뒤집어놓았던 '태블릿PC' 보도 과정, 대통령 선거, 미투운동, 남북미 대화의 현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등등 하나하나 흥미롭다. 이 책에는 이런 묵직한 고민뿐 아니라 '음성지원' 어조가 담긴 개인적인 에피소드와 소회까지 담겨 있다. JTBC로 적을 옮긴 과정에 대한 뒷이야기, 명사들과의 인터뷰, 함께 보도를 만들어간 사람들과의 소통 과정, 방송 중 돌발상황 등이 녹아 있다.

저자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저널리즘 철학의 핵심은 전통적인 '의제설정(議題設定·Agenda Setting)'을 넘어 '어젠다 키핑(Agenda Keeping)'이다. 매스미디어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현행 이슈에 대한 공중의 생각과 토론을 설정하는 방식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용어인 의제설정에 더해 의제를 꾸준히 지켜냄으로써 시민사회에 기여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탐사보도와 기획보도의 지속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의제를 계속해 보도하면서 시쳇말로 '진돗개처럼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개념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실천했다고 주장한다. 세월호참사 보도 때 제대로 사실과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 기자를 쓰레기에 비유하는 '기레기'라는 말이 생길 때 팽목항과 목포신항 현장에서 1년 가까이 버티며 보도를 이어간 것, 그리고 그것이 다시 (겉으로는 무관해 보이는) 국정농단 사태의 태블릿PC 보도로 이어진 사실은 어젠다 키핑의 가치를 증명한다.

1부에는 세월호참사와 국정농단 사건을 포함해 어젠다 키핑의 관점에서 저자가 경험하고 보도해온 사건들이 담겨 있다. 삼성 관련, 대통령 선거, 미투, 남북미 대화 국면의 보도 등이다. 2부 '저널리즘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서는 저자의 저널리즘 철학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공영방송, 레거시 미디어와 디지털, '단독' 경쟁, '기레기', 언론과 정치 등 핵심적인 주제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그는 스스로 "레거시 미디어 시대의 말석에 앉아 버티다가 운 좋게 디지털 시대로 넘어온 사람"이라고 말한다. '포스트트루스'의 시대에 저널리즘의 정석을 말하는 이유는 '페니프레스(Penny Press)' 시대에 황색저널리즘이 만연했어도 오히려 정론지가 필요했던 것처럼 한국사회가 아무리 양단 혹은 그 이상으로 나뉘어서 지금과 같은 비합리적 쟁투를 계속한다 해도, 우리가 버틸 수 있는 것은 합리적 시민사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손석희는 "디지털시대에 미디어가 수익구조로 들어서기 위해서 똑같이 쏟아내는 저급하고, 극도로 뻔하게 정치 편향적인 기사에 굳이 돈을 낼 필요는 없다. 그런 것들은 어차피 공짜로 넘쳐나고 있지 않은가. 만일 기사 가치에 따라 시청자나 독자들에게 비용을 청구하고 싶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기사를 써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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