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의 시선-50대 후반의 늦가을

  • 김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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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2-01 17:35   |  수정 2021-12-0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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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교육인재개발원장 겸 CEO아카데미 부원장

단풍이 이쁘기로 소문난 팔공산 순환도로. 며칠 전에 필자가 들른 그 곳에는 색바랜 단풍과 앙상한 가지가 뒤섞여, 또 다른 멋진 장면이 연출됐다. 아직 절정을 유지하고 있는 단풍도 군데군데 있었지만, 곧 낙엽이 될 것 같았다. 겨울을 눈앞에 둔 늦가을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50대 후반인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가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100세 시대이니, 50대 후반은 늦가을이 아닌 초가을이라고.

50대 후반에 겪을 수 있는 일들이, 요 며칠 사이에 필자의 주변에서 일어났다. 투병 생활을 하던 친구는 결국 세상을 떠났고, 제법 큰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친구는 "건강 관리 잘하라" 고 내게 주의를 준다. 딸 셋을 낳고도 기어코 늦둥이 막내 아들을 뒀던 친구는 이번 대학 입시 때 막내가 수시전형으로 합격했다고 아주 즐거워했다. 서울 소재 대학의 '다자녀 전형'이라고 했다. 다자녀 가정에 주는 학자금 지원도 있어서, 대학 보내는 비용도 많지 않다고 좋아했다. 나이가 드니, 자식에게 좋은 일 생기는 게 가장 즐겁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나보다 젊은 사람들과 함께 보내면 즐거운 것도 나이를 먹었다는 또 다른 방증이다. 어느 순간부터 여러 명이 모이면, 필자는 나이 많은 편에 속했다. 며칠 전에는 참 오랜만에 10명이 모여 술 자리를 가졌다. 참석자 중 내 나이가 가장 많다. 그런데 이날 참 많이 웃었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 보내면 참 많이 웃는 나를 발견한 지는 오래됐다. 젊은 사람들의 유쾌함 때문에 덩달아 잘 웃는다.

어제는 젊었을 때를 추억하고, 미래를 생각하게 한 만남이 있었다. 30년 전, 영남일보에 입사하기 전에 잠시 다녔던 회사에서 상사로 모셨던 분을 만났다. 그 상사와 친분이 있는 영남일보 CEO아카데미 회원 덕분에 연락이 돼 만났다. 잊고 지냈던 30년전 일들을 떠올리며 웃었다.

그 상사와 함께 만난 분은 내가 평소 잘 아는 언론계 선배다. 두 분이 고교 동창이어서 자연스럽게 함께 했다. 올해 70세인 기자 출신의 선배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었다. 본인이 몸 담았던 곳보다 규모가 작은 신문사에서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은퇴한 이후에도 글 쓰는 것을 꿈꾸는 필자이기에 그 선배의 모습이 멋졌다. 신문사의 사설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할 일이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전히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라 떼(나 때)'를 얘기하는 뒷방 늙은이는 아닌 것이다. 그 선배는 "나이 들면 돈이 중요하다" 고 조언했다. 아주 현실적인 충고다. 퇴직 이후에도 긴 세월을 살아야 하는 삶에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번 달 들어 중장년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에 평소보다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늦가을에 대한 필자의 선입견 때문이다. 그 선입견은 영화와 연관 있다. 늦가을, 한문으로는 만추(晩秋)다. 영화 '만추'라고 하면 필자는 1981년 김혜자, 정동환 주연의 영화를 떠올린다. 2011년, 중국 배우 탕웨이와 현빈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만추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추는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늦가을이라 하면 뭔가 안타깝고 아쉽다. 좋은 계절 가을을 보내기 싫어서인가. 아니면 가을은 수확의 계절인데, 늦가을까지 아직 수확하지 못한 뭔가가 있어서인가.

2021년 늦가을, 예년보다 조금더 감성적이 된 나를 본다. 그러면서 50대가 됐을 때, 좋아했던 말을 다시 떠올린다. '20대의 호기심, 30대의 역동성, 40대의 원숙함을 모두 갖춘 나이가 50대다.' 머지않아 50대를 응원하는 말 대신 60대를 격려하는 메시지를 더 좋아할 때가 올 것이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멋지게 익어가자고 새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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