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대구 수제맥주 양대산맥 (1) "대구 수제맥주의 투톱, 그 맛에 빠져든다"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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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14   |  발행일 2022-01-14 제33면   |  수정 2022-01-14 08:59
문준기 대경맥주 대표와 정만기 대도양조장 대표
문준기 대표·정만기 대표.

◆문준기 대경맥주 대표 "대구만의 맥주를 만들어 내겠다"

문준기(63) 대경맥주 대표는 30년 이상 경력의 브루마스터 출신 CEO다. 고려대 농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양조전문교육기관인 시카고 지벨연구소 조주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오비맥주 양조기술연구소, 품질관리·생산부장 등을 역임한 지역의 대표적 조주 전문가로 불린다.

2000년대 초반 무렵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궁금한 게 생겼다. "우리나라는 대량 생산이 주류인데 유럽에서는 집이나 마을 단위에서 만든 수제맥주가 많다. 우리나라는 왜 안될까"라며 관련 자료들을 찾다가 주세법이 소규모 맥주생산을 막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당시 주세법이 양조장 밖에서 수제맥주 판매를 금지한 것이다. 우리나라 맥주 역사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되는데 그때 만들어진 회사가 광복 후 지금까지 맥주 시장을 좌지우지하다보니 관련법이 시대에 맞게 고쳐지지 못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천편일률적인 맥주 마시기를 강요했다. 문 대표는 혹시 법이 바뀐다면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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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기 대표

달성군 논공에 120평 규모 공장 지어
로컬 맥주 만들겠단 포부로 판로 개척
전국 170여 개 수제맥주 양조업체 중
상위 10% 안에 드는 맥주 생산하기도
코로나 사태에도 대구시 등 지원 받아
'대구 탄 비어''세븐스타''80맥주' 출시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났다. 2014년 양조장 밖 유통이 허용되는 것을 골자로 주세법이 개정됐다. 문 대표는 2015년 '효모가 살아있는 제대로 된 로컬 생맥주를 만들어보자'고 마음 먹고 경북 영주에서 인삼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문 대표는 당시를 회상한다. "맥주의 특성이 막걸리와 매우 닮아 있다. 곡물발효주인 데다 제조 과정까지 흡사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럽과 같이 살아있는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이나 소규모 공장이 자리잡을 수 있겠다. 유통기한을 늘리려 여과와 열처리 등 후공정을 통해 영양분을 제거한 병맥주와 달리 생맥주는 효모 등이 그대로 살아있어 과음하지 않는다면 건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문 대표의 이야기가 입소문을 타면서 대구까지 흘러 들어갔다. 어느 날 대구시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구로 오십시오. 함께 지역 명물로 키워봅시다." 문 대표는 화답했다. "대구의 관광자원이 되겠습니다."

문 대표는 달성군 논공에다 120평 규모의 공장을 지었다. 몇 개월간의 준비 과정을 거친 뒤 2016년부터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로컬 생맥주인 대경맥주의 닉네임을 'D FIRST'로 정했다. 삼성라이온즈파크 2층에 제조와 판매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디퍼스트 스포츠 펍'도 차렸다. 한국 어디에 가도 똑같은 맥주가 아닌 지역 특색을 가진 맥주를 만들겠다는 신념 하나로 판로를 개척했다. 치맥축제와 연계해 식품산업과 함께 발전하는 대구 대표 먹거리로 자리잡겠다는 포부로 맥주 공룡들의 틈새를 노렸다.

시장 공략이 쉽지 않았다. 엔지니어 출신이다보니 복잡한 주류 유통 경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판매처에서 요구하는 부분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자본이 부족했다. 포기하지 않았다. 전국 170여 수제맥주 양조업체 가운데 상위 10% 안에 드는 수준의 맥주를 만들었다. 대구컨트리클럽을 뚫었다. 사문진 나루터 주막에도 납품하기 시작했다. 달성군 현풍읍 비슬산자연휴양림 안에 있는 아젤리아 호텔에서 콜이 왔다. 칠성시장 야시장에 공급했다. 대구시와 손을 잡고 2020년 치맥축제 론칭을 목표로 새로운 맥주 출시를 기획했다. 쉽지 않았지만 즐거운 여정이었다. 문 대표의 꿈도 조금씩 영글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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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라이온즈파크 안에 마련된 대경맥주 브루펍 '디퍼스트 스포츠 펍'
2020년 2월 대구를 덮친 역병이 모든 걸 멈추게 했다. 많지 않았던 판매처 가운데 상당수를 잃었다. 5명이던 직원이 2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넋놓고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 대구시와 대구테크노파크 등의 지원을 받아 신맥주 제조에 매달렸다. '대구 탄 비어'와 '세븐스타' '80맥주'를 만들었다. 대구 탄 비어는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로 유명한 대구의 무더운 여름을 대표하는 맥주로 라거 타입의 저알코올(도수 3.5%)로 제조됐다. 세븐 락 비어는 대구 칠성시장을 상징하는 수제맥주로 칠성야시장의 먹거리를 콘텐츠화한 관광상품용이다. 알코올 도수는 7.0%다. 80맥주는 대구의 상징인 팔공산을 모티브로 제조한 것으로 알코올 도수 8.0%다. 이렇게 해서 문 대표가 만든 맥주는 모두 5종류다. 조만간 특정 행사를 노린 스페셜 맥주도 개발할 계획이다. 달성군에 있는 유휴지를 활용해 맥주의 주원료인 맥주보리도 직접 재배할 생각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코로나19가 만들어 놓은 장애는 높고 넓다. 그러나 문 대표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 "대구를 찾는 관광객에게 대구만의 맥주를 만들고 향후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

우리나라 수제맥주의 역사는 20여 년에 불과하다. 우여곡절 끝에 수제맥주 시장이 열렸지만 기존의 대형 맥주와는 경쟁 자체가 어려운게 현실이다. 최근 몇 년 새 대형 맥주사의 틈새를 노린 수제맥주의 약진이 도드라졌다. 지난 2020년 국내 맥주시장에서 국산 수제맥주의 규모는 1천180억원으로 나타났다. 2017년 433억원과 비교하면 3년 만에 3배 가까이 성장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집에서 술을 즐기는 홈술 문화가 확산되면서 편의점에 캔 수제맥주를 납품하는 업체들은 큰 성공을 이뤘다. 업계 최초로 국내 5대 편의점에 입성한 제주맥주는 2017년 22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2020년에는 335억원으로 15배가량 증가했다. 수제맥주 관계자들은 2023년에는 시장 규모가 3천700억원 정도 될 것으로 전망했다.

대구지역에서도 수제맥주 시장이 엄존하고 있다. 그 중심에 지역 수제맥주계의 양대 선두주자로 일컬어지는 대경맥주와 대도양조장이 있다. 수제맥주의 전국적인 확산과 달리 이들은 2년 동안 시장 침체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경맥주는 지난해 회사 설립 이후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주로 지역의 식당이나 술집에 생맥주를 납품하는 대경맥주의 지난해 맥주 출고량은 전년 대비 반토막이 났다. 대도양조장 역시 최근 매출이 큰 폭으로 감소해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의 위기앞에 굴복하지 않는다. 수제맥주의 메카 대구를 만들기 위해 어제도 오늘도 분투하고 있다. 이들은 꿈이 이뤄지는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대구 수제맥주 양대산맥 (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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