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단멸론에서 벗어나라

  • 정재걸 대구교대 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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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10 07:41  |  수정 2022-01-10 07:47  |  발행일 2022-01-10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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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걸 (대구교대 교육학과)

'단멸'이란 끊어지고 소멸한다는 뜻이다. '나' 즉 자아는 어느 시점 혹은 단계에서 지속 또는 상속이 끊어지고 완전히 소멸한다는 견해를 단멸론이라고 한다. 자아뿐만 아니라 내 밖의 세계, 즉 우주도 빅뱅이라는 어느 한 시점에서 생겨나서 계속 팽창하다가 어느 한순간 큰 폭발(빅 크러쉬)과 함께 소멸할 것이라는 생각 역시 단멸론이다.

유물론을 바탕으로 하는 현대 과학은 단멸론을 주장한다. '나'라고 여기는 몸과 마음은 어느 특정한 시점에서 생겨났다가 어느 시점에서 완전한 무로 소멸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이런 주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매 순간 삶의 허무함을 느끼고 또 순간순간의 쾌락에 몰두한다.

단멸론은 왜 잘못된 주장일까? 단멸론은 우리 분별 의식의 산물이다. 우리는 눈이 두 개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두 가지로 나누어 본다. 무엇이든 끊어지고 소멸한다는 단멸론에 반해 변하지 않고 늘 존재하는 것이 있다는 주장을 상주론(常住論)이라고 한다. 우리의 몸은 죽지만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일종의 상주론이다. 단멸론이 잘못되었듯이 상주론도 잘못되었다. 둘 다 분별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분별 의식은 비교에서 생긴다.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고 오늘을 내일과 비교하는 것이 단멸론의 출발이다.

아침에 일어나 몸이 찌뿌둥하면 걱정이 앞선다. 하루하루 몸이 쇠약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제와 혹은 젊은 시절과 비교하지 않으면 오늘 아침의 내 몸은 있는 그대로다. 그것은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다. 교통사고를 당하여 양쪽 다리를 절단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이 다리가 멀쩡하던 시절과 비교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정말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그냥 오늘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하루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나는 언제 태어났는지 모른다. 나의 삶은 어머니의 난자가 수정되었을 때 시작되었을까? 아니면 아버지의 정자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시작된 것일까? 나의 죽음 이후에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일까? 현대물리학의 일파에서 주장하듯 내가 물질이 아니고 정보라면 상주론의 주장처럼 나는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주가 빅뱅부터 시작되었다면 빅뱅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을까? 빅 크러쉬 이후 우주가 소멸한다면 그 이후 우주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곧 단멸론이고 상주론이다.

아침에 양치질을 하며 시큰거리는 이를 걱정한다. 이제 점점 더 이가 나빠질 것이고 결국에는 이를 다 뽑고 틀니를 끼우든지 임플란트를 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루가 우울해진다. 그러나 어제와 비교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또 내일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오늘 하루는, 지금 이 순간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 완전할 뿐이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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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걸 대구교대 교육학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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