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대구 수제맥주 양대산맥 (2) "수제맥주의 참맛은 끊임 없는 시도와 변화로 완성"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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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14   |  발행일 2022-01-14 제34면   |  수정 2022-01-14 09:03
문준기 대경맥주 대표와 정만기 대도양조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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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양조장에서 만든 수제맥주가 지난해 10월22~2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비어챔피언십에서 각종 상을 휩쓸었다.

◆정만기 대도양조장 대표 "인생과 수제맥주는 계속 함께한다"

정만기(54) 대도양조장 대표는 술을 아주 좋아하는 공작기계 판매업자다. 식당을 운영하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어릴 적 꿈이 유명한 식당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맥주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2018년 우연한 기회에 대구시 중구 동덕로 김광석길 끝 자락에 있는 825㎡ 규모의 방치되다시피한 낡은 적산가옥을 인수하게 된다. "재건축해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크림 맥주가게 같은 것을 해볼까" 생각하며 공사를 준비했다. 어느날 1953년 작성된 이 건물의 건축물대장을 봤다. 막걸리를 만들던 양조장이었다. '대도양도장'. 무언가가 머리를 쳤다. 몸이 먼저 움직여 건물을 다시 훑어보기 시작했다. 건물 곳곳이 막걸이 양조에 용이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 전통을 이어받아 맥주 양조장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이 생각을 바탕에 깔고 공사를 시작했다. 한쪽에 양조장(브루어리)을 만들고 다른 한쪽에는 양조장에서 만든 술을 파는 수제맥주집(펍)으로 꾸몄다. 말그대로 '브루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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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기 대표

김광석길 끝자락 낡은 적산가옥 인수
양조장과 술 판매하는 '브루펍' 조성
수소문으로 찾은 미국인과 의기투합
2019년 첫 맥주 '헬레스 라거' 만들어
마니아들에 호평…1년만에 20여종 생산
작년 '아시아 최고 브루펍'에도 선정


문제가 생겼다. 정 대표는 수제맥주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그렇지만 생각을 되돌리지 않았다. 그냥 부딪쳤다. 대구에 있는 수제맥주 판매점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알려주는 수제맥주집을 갔다. 맥주집 주인을 통해 유통업자를 만났다. 그 업자에게서 대구의 수세맥주 판매시장을 알게 됐다. 수제맥주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다른 것들은 스스로 준비할 자신이 있었지만 맥주를 만드는 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수소문했다. 미군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아내를 따라 한국에 들어와 집에서 맥주를 만드는 미국 사람, 제라드 해치를 알게 됐다. 그는 상업적인 맥주를 만들어 보진 않았지만 홈 브루어리 분야에서는 상당한 실력자였고 맥만동(맥주를 만드는 동아리) 대구지부 회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를 만났다. "나는 꿈이 있다. 맥주를 잘 만든다고 들었다. 나와 같이해보자. 당신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자 해치는 "아내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며칠의 시간을 달라"고 말했지만 바로 그날 정 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오케이. 함께해보자." 2018년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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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양조장 전경.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시장조사조차 없이 시쳇말로 무식하게 들이댔다. 가게(펍)를 오픈했다. 그러나 맥주를 만들 수 없었다. 기계를 발주했지만 4개월 정도 걸린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다른 사람이 만든 수제맥주를 팔면서 기계가 들어올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2019년 6월 처음으로 양조했다. '헬레스 라거'라 명명했다. 다른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에 익숙한 손님들에게 과연 제대로 어필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결과는 성공이었다. 마니아들이 "괜찮은 맥주다"라는 평가를 내려줬다. 자신감이 생겼다. 해치와 머리를 맞댔다. 헬레스 라거의 일정한 맛을 유지하는 한편 이보다 조금씩 퀄러티가 높아지는 맥주를 만들기로 했다. 둘은 수제맥주의 참맛은 끊임없는 시도와 변화 추구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믿었다. 1년여만에 20여 종을 만들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양조를 하고 회당 1천ℓ정도 생산한다. 이 가운데 14종을 상시판매한다. 메인 맥주가 6개 정도되며 나머지는 스페셜과 시즌닝 라운드용으로 제조 판매된다. 정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단순히 돈만 생각하면 메인(맥주)만 만들면 되지만 이건 분명 수제맥주 양조장이 갈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잘나가던 양조장은 코로나19를 피해갈 수 없었다. 2020년 2월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나오자 한 달간 브루펍을 닫았다. 당시 정 대표에게 한 달은 그냥 물리적인 기간이 아니었다. "재오픈하면 과연 손님들이 다시 찾아올까" 불면과도 같은 밤들을 지샜다. 기우였다. 다시 문을 열자 매출이 더 올랐다. '천객만래'를 실감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만만찮았지만 그때는 인원이나 시간 제한이 없었다. 호황이 이어질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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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양조장에서 만든 수제맥주.

정 대표의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부가 그해 연말부터 인원을 제한하고 영업시간을 단축해 버렸다. 정 대표는 지금까지 버텨내고 있다.

이런 와중에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대도양조장이 지난해 10월22~2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비어챔피언십에서 '아시아 최고 브루펍'으로 선정됐다. 대도양조장이 출품한 '대도 골든에일'은 "맥주 맛의 균형이 맞고 스타일이 이상적인 골든에일"이라는 심사평과 함께 골든에일부문 금상(1위)을 수상했다. '대도 필스너' '퍼거슨'은 각각 필스너와 스트롱에일 부문에서 은상(2위)을 거머쥐었다. '대도IPA' '메가홉스' 등도 수상작에 이름을 올리는 등 대도양조장 11개 출품작 중 7개가 수상했다. 2018년부터 시작한 아시아비어챔피언십은 아시아 전역에서 출시되는 맥주를 대상으로 20개 부문에 걸쳐 최고 품질의 맥주를 선정하는 품평회다. 올해는 15개국 80개의 브루어리가 참여해 32개 분야에서 367종의 맥주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대도양조장표 수제맥주가 해외무대에서 인정 받은 것이다.

정 대표는 오늘, 내일을 꿈꾼다. "인생과 수제맥주는 계속 함께한다. 수제맥주와 음악을 합해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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