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괴물나라 이야기

  • 김신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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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17   |  발행일 2022-01-17 제27면   |  수정 2022-01-17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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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곤 논설위원

로지는 괴물나라에 살고 있다. 날카로운 갈퀴발톱과 번쩍번쩍 빛나는 초록 눈을 가진 괴물나라에선 괴물예절이 있다. 친구들과 서로 싸우고, 거칠게 굴고, 약자를 발로 차는 등 상대방을 무조건 괴롭혀야 한다. 표정과 말이 사나워야 한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아야 한다. 반면 로지는 전화를 걸 때 상냥한 목소리로 "여보세요"라고 말하고, 길을 건너는 노인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로지의 아빠는 걱정이었다. "괴물 예절을 배우지 못하면 어쩌지.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려고…." 엄마 아빠의 걱정을 잘 아는 로지는 친구 프루넬라에게 괴물예절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프루넬라는 로지에게 표정을 무섭게 하고, 식당 주인에게 마구 화를 내며, 삼촌 집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로지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프루넬라처럼 할 수 없었다. 로지는 자기가 부모님을 얼마나 실망시키는지 알고는 풀이 죽었다. 그러던 어느 날 로지가 집으로 돌아오니 수도관이 터져 집안이 온통 물바다가 되고 있었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로지가 소리치자 엄마 아빠가 달려 나왔다. 로지 엄마와 아빠는 배관공에게 전화를 걸어 으르렁거리고 고함을 질러댔다. 배관공은 전화를 딱 끊어버렸다. 물은 점점 불어나 집안 곳곳에 넘쳐흘렀다. 바로 그때, 로지가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여보세요. 우리 집에 물이 새는데요. 미안하지만 좀 와 주시겠어요?" "네, 곧 가겠습니다." 즉시 배관공이 와서 모든 상황이 정리됐다. 로지의 엄마 아빠는 말했다. "로지야, 네가 그 이상한 예절을 알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구나. 이젠 괴물예절 따윈 신경 쓰지 마라." 이 내용은 미국의 조안나 코울과 재러드 더글하스 리가 지은 동화의 줄거리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의 모습이 반추된다. 법을 위반하면 무조건 아니라고 잡아떼고 내 편이 아니면 누구든 나쁜 놈으로 몰아붙이는 세상이 됐다. 잘못을 사과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칭찬보다는 비난이, 시인보다는 부인이, 협력보다는 분열이, 적법보다는 위법이 정상인 괴물나라가 되어간다.

상대방을 무조건 적폐라고 몰고 궤멸시키려 한다. 조국과 윤미향의 내로남불과 뻔뻔함을 보면서 "아, 저렇게 사는 게 정답이구나"싶다. 보수는 가치를 상실하고 자기정치에 매몰돼 있다. 토착왜구니, 빨갱이니 하면서 서로를 공격한다. 대선주자들은 대통령이 되면 상대후보를 구속시키겠다고 보복을 다짐한다. 녹음파일 싸움도 꼴불견이다. 자영업자에게 얼마를 보상을 하자고 하니, 한술 더 떠서 당장 더 많이 주자고 한다. 후대들이 빚더미에 앉든 말든 현금을 퍼주겠다는 뻥튀기, 사기성 공약 경쟁이 난무한다.

대선 이후엔 누가 당선되든 충돌과 반목, 질시와 폭주가 판을 치고 서로를 못 죽여서 안달할 것 같다. 온 나라가 투전판이고 난장판이다. 정직과 예의는 남의 나라 얘기고, 정치개혁과 국리민복, 시대정신은 찾을 수 없다. 화해와 통합의 리더십도 없다. 이런 괴물나라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의 집단지성(集團知性)밖에 없다. 정의가 회복돼야 사람 사는 나라가 된다. 임마누엘 칸트는 "정의가 무너지면 인간은 이 땅에 더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국민들의 온전한 집단지성만이 평화로운 나라, 미래지향적인 나라를 기약할 수 있다. 괴물나라를 청산하려면 국민들이 회초리를 들어야 하고, 건전한 상식을 가진 '로지'가 돼야 한다.
김신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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