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7시간 통화'와 '형수욕설'이 궁금한 이들에게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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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0   |  발행일 2022-01-20 제23면   |  수정 2022-01-20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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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정치부장

처음부터 내키지 않았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일주일간의 고단했던 각자의 일상을 위로하며 '놀면 뭐 하니'의 '도토페'나 낄낄거리며 보는 것이 제격인 주말 저녁에 웬 '스트레이트'?·짜증 반 궁금증 반의 심정으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아내 김건희씨와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의 50여 차례에 걸친 통화가 공개된다는 MBC에 채널을 맞췄다.

사적인 전화 통화를 전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생각은 일단 접기로 했다. 남의 사생활을 엿듣는 듯한 알 수 없는 찜찜함도 묻었다. 유권자로서 소중한 한 표를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라는 나름의 정의감으로 죄책감을 밀어냈다.

하지만 결정적 한 방 없이 끝나버린 TV쇼에 애써 외면했던 질문들이 고개를 다시 내밀었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발언이 없지는 않았으나, 논란을 무릅쓰고 공개해야 할 만큼 중요한 공익적인 정보가 있었는가. 나아가 사적인 전화 통화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윤리적·법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그렇다면 수많은 사적 전화 통화에서 나는, 당신은 얼마나 올바른 사람인가.

근데 이게 끝이 아니란다. 아직 들어야 할 음성파일이 더 있었다. 이번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다. 누나 동생 하면서 주고받은 뒷담화로도 모자라 이젠 형님·형수와의 욕설이 난무하는 남의 가정사까지 들어야 할 판이니, 이 나라에서 유권자 노릇하기만큼 극한 직업도 따로 없다.

대선이 5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지난 14~15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이 후보의 지지율은 36.2%로,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 평가 여론 42.2%에 미치지 못했다. 또 윤 후보의 지지율은 41.4%를 기록했지만, '현 정권 국정운영 심판을 위해 야권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 50.3%와는 격차가 있었다.

이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을, 윤 후보는 정권교체 여론을 자신의 지지율로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도 쪼개기 신공이 주특기인지 영호남을 가르고 2030과 4050을 가르고 이대남과 이대녀를 가르며 미분의 정치학을 시전하고 있으니. 이런 판이라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리저리 쪼개진 나라를 이끌어가기엔 역부족일 터다.

강성 지지층을 기반으로 하는 팬덤 정치 구조는 대한민국에서 갈수록 공고화하고 있다. 쉽고 편한 길일 순 있으나 정치가 가야 할 길은 아니다. 반대자들을 끊임없이 설득하여 공동의 목표 아래 함께 손잡는 민주주의를 실현해내는 것이 정치다. 내 편 네 편을 가르고 네 편은 물리치며, 갈등과 혐오를 먹고 자라는 정치는 괴물이 된다.

결국엔 이번 대선도 15% 정도의 중도층으로 외연 확장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당락이 갈릴 것이다. 두 당은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 상승의 의미를 진중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따라서 관건은 이 진흙탕의 싸움에서 누가 먼저 손을 떼는가다.

극단적 지지층만 가득한 그곳에선 어차피 음성 파일 따윈 힘을 쓰지 못한다. 그러니 먼저 중원으로 나오시라. 그리고 당당하게 정책과 실력으로 증명하시라. 누가 더 유능한지, 누가 더 나은 미래를 그리는지, 누가 더 큰 희망을 보여주는지를. 우리가 궁금한 것은 음성파일이 아니다. 표는 그렇게 얻어야 한다.
이은경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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