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북 고령 산당리 바위 구멍 유적과 별바라기 마을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
  • 입력 2022-01-21   |  발행일 2022-01-21 제16면   |  수정 2022-01-21 07:56
별빛이 흐르는 듯…크고 작은 600여개 바위구멍 고대인의 기원 담겨
청동기인 풍요·다산 등 빌던 장소
별자리 모양·윷판 형태 구멍 남겨
주민들 오랫동안 정성껏 당제 지내
새단장 인근 '별바라기마을' 정감

1
산당리 바위 구멍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까지 확인된 고령 지역의 바위 구멍 유적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구멍 수도 가장 많다. 옛 사람들은 이곳에서 풍요와 다산·안전· 장수를 빌었다고 한다.


검은빛의 커다랗고 평평한 바위가 비스듬히 누워있다.

백학산의 남쪽 산자락이 길게 뻗어 내려와 거의 소멸되는 자리다.

서편으로는 산당천이 흐르고 남쪽으로는 너른들 너머 안림천이 흐른다.

사람이 살기에 썩 괜찮은 이곳에 오래전 청동기인들이 살았고,

그들은 저 검은빛의 바위에 흔적을 남겨 놓았다. 무수한 구멍들이다.

그것은 별이라고 여겨지며, 옛사람들이 행한 기원의 의식으로 간주된다.

오늘날 이곳에는 산당리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의 별을 그리고 있다.

2
바위 구멍은 전체 바위면의 높은 부분에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다. 특히 일곱 개의 구멍을 거의 일직선상으로 배치하고 얕은 홈으로 연결시켜 놓은 것이 주목된다.


◆산당리 바위 구멍 유적

바위는 사암질이다. 밤바다처럼 푸른 기운도 느껴진다. 길이는 1천250㎝, 너비는 1천200㎝ 정도로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게 비스듬하다. 높이 차이는 290㎝ 정도다. 이 바위에 새겨진 구멍이 600여 개나 된다. 현재까지 확인된 고령 지역의 바위구멍 유적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구멍 수도 가장 많다. 지름이 18~24㎝, 깊이가 8~12㎝에 이르는 대형 구멍도 여섯 개 정도 확인된다.

바위 구멍은 전체 바위면의 서북쪽 상부의 높은 부분에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다. 특히 일곱 개의 구멍을 거의 일직선상으로 배치하고 구멍 사이를 얕은 홈으로 연결시켜 놓은 것이 주목된다. 얕은 홈을 길게 연결시켜 놓은 경우도 있다. 선형의 연결 홈은 바위면의 기울기와 같은 방향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리 그어져 있다. 별빛이 흐르는 것처럼….

바위 곁에 한 그루 참나무가 깃발처럼 서 있다. 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와 이파리들은 바위 면을 타고 미끄러져 흩어졌다. 나무 아래에는 윷판이 하나 새겨져 있다. 일반인의 눈에는 그저 아리송하지만 윷판 모양의 바위구멍으로 제의를 행한 공간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안내문이나 평면도가 없어 아쉽다. 윷판의 지름은 24㎝이고 구멍 한 개의 지름은 1~3㎝, 깊이는 0.2~0.4㎝ 내외라 한다. 구멍을 새긴 방식으로 봤을 때 별자리형 구멍과 윷판형 구멍은 비슷한 시기에 동일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윷판 모양의 바위구멍이 입지한 지역은 크게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 및 기타 권역으로 나누어지는데 특히 경북 지역이 전체의 7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고령 지역이 분포의 밀집성이 높고 숫자도 가장 많은 곳에 속한다.

밤하늘을 바라보면 가끔 어두운 방 안에서 면벽하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별이 새겨진 바위를 바라보는 일은 면벽과 비슷하고 그때 바위는 우주처럼 느껴진다. 고대인들은 바위에 홈을 내고, 홈에 작은 돌을 굴려 구멍을 만들었다고 한다. 작은 홈이 탱자 혹은 달걀 크기가 될 때까지, 오래오래 작은 돌을 굴리며 풍요와 다산과 안전과 장수를 빌었을 것이다. 산당리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바위에 정성껏 당제를 지냈는데 '새마을사업 등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산당리 바위유적 바로 옆에 석재 공장이 있다. 바위 상부에서 공장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옛날에는 마을을 적시는 산당천이 훤히 보였을 것이다. 남쪽으로는 먼 데로 이어지는 길과 마을을 먹이는 들이 훤하다. 기원하기 좋은 장소다. 저 반짝거리는 비닐하우스에서는 고령 딸기가 익어가고 있겠다.

3
산당 별바라기 마을은 지난해 고령 아름다운 마을 콘테스트에서 으뜸상을 수상했다.


◆산당 별바라기 마을

석재공장 옆으로 들어서면 마을이다. 너비가 10m는 넘어 보이는 산당천이 퍼석한 흙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천의 서안은 백산리, 천의 동안이 산당리(山塘里)다. 마을에는 못이 없는데 못 당(塘)자를 쓴다. 산당천에 항상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 연못이 필요 없었지만 마을이 번창하려면 못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이름으로 보완했다고 한다.

오늘 천은 목마르다. 생각해 보니 비를 본 지 오래 되었다. 산당천을 가로지르는 26번 국도 명덕교 바로 곁에 오래되어 보이는 콘크리트 다리가 노란 옷을 입고 있다. 내력을 알려주는 동판이 모두 소실되어 언제 적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국도가 생기기 전 옛길에 튼튼하게 놓인 신식 다리였을 것이다.

"오래 됐어. 오래 됐지. 못났다고 우리 이장님이 이쁘게 했어. 저 안에 주차장도 넓고 이뻐. 우리 이장님이 담장도 깨끗하게 했지. 밤에는 별이 반짝반짝 해."

노란 다리에 별들이 떠 있다. 그중 가장 커다란 별에 '산당 별바라기 마을'이라 쓰여 있다. 멀찍이 보이는 하얀 담벼락에 자그마한 별들이 색색으로 떠 있다. 청동기시대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바위에 별을 새겼듯이 오늘날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별을 그렸다.

산당리는 지난해 고령 아름다운 마을 콘테스트에서 으뜸상을 수상했다. 마을 입구를 환하게 정비하고, 지붕을 개량하고, 폐 담벼락에 화단을 조성하고, 벽화를 그리는 등, 여름내 땀 흘린 결과였다. 많은 주민들이 참여한 마을 가꾸기였지만 할머니는 한사코 '우리 이장님'의 공덕이라 칭송하신다. 노란 다리 너머 마을 입구 느티나무 아래에 과거 마을을 위해 힘쓴 이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세운 비석 2기가 서 있다. 하나는 의관(議官)을 지냈다는 박공(朴公)의 비석, 또 하나는 1988년 마을 안길을 포장하고 세운 기념비다. 포장 기념비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본다. 서, 이, 박, 신, 한, 류, 김, 오, 진 등 다양한 성씨의 사람들이 성금을 냈다. 마을은 여러 성씨가 모여 서로 돕고 사는 것이 특징이라 한다.

4-1
산당리 마을의 벽화. 주민들은 지붕을 개량하며 마을 가꾸기에 온 힘을 쏟았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것은 교회다. 1907년 초가 1칸으로 시작되었다는 산당교회는 외부의 원조 없이 자립적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1954년에 사립공민학교 초등과정을 개교했고, 1964년에는 사립고등공민학교 중학과정을 허가 받아 13년 동안 약 3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고 한다. 1991년에는 산당장학회, 1993년에는 사랑의 공부방이 발족되었다. 작은 교회가 작은 마을에서 해온 일이 크다. 현재의 건물은 1999년에 지어진 것이다. 교회 안에 용담어린이집이 있다. 용담은 안림천의 옛 이름이다. 어린이집 담벼락은 아이들의 그림으로 가득하다. 별과 꽃과 물고기들, 초승달에 앉은 아이, 로켓을 타고 날아가는 아이, 고리를 가진 토성, 그리고 많은 아이들의 이름이 있다.

특별할 것 없는 마을이다. 휘어진 나무기둥에 반듯한 벽을 올린 집이 있고, 돌담을 쌓은 집이 있다. 선명한 파란 지붕이 있고, 빛바랜 파란 지붕이 있다. 노랗고 파란 물탱크가 있고, 하늘을 막아 놓은 우물이 있다. 박공아래 속살을 드러낸 흙벽이 있고, 새로 지은 아담한 마을회관이 있다.

회관 뒤편에는 '산당동민제명비'가 큼직하게 서 있다. 거기에는 '마을에는 재실이 하나도 없고 5대 이상 거주한 가문도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다양한 성씨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현재 거주하고 있는 동민과 선대의 이름을 기록해 두었다. 어쩐지 굉장하다는 느낌이 든다. 특별할 것 없는 마을의 특별함이다. 올 봄에는 마을 사람들이 하나하나 심은 250그루의 영산홍이 눈부시게 피어날 것이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 고령 IC에서 내려 좌회전해 26번 국도를 타고 합천 야로, 고령 쌍림 방향으로 간다. 쌍림면소재지를 관통해 직진하면 송림리 지나 우측으로 커다란 화강석이 쌓여 있는 쌍림석재와 함께 산당리 마을 표지판이 보인다. 석재공장 바로 오른쪽에 산당리 바위구멍 유적이 위치하며 국도에서도 보인다. 공장 왼편으로 들어가면 산당리 별바라기 마을이다. 마을 안에 큰 주차장이 두 곳 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