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라인 비트윈: 경계 위에 선 자…3년 전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가 예견한 팬데믹 풍경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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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1   |  발행일 2022-01-21 제15면   |  수정 2022-01-21 07:58
철저한 자료조사·데이터 바탕
감염병 닥친 인류 묘사한 소설
사이비 종교의 부조리도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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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 리 지음/조영학 옮김/허블/424쪽/ 1만6천원

2019년 11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새로운 유형의 변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발생한다. 이어 2020년 2월 대한민국에서도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벌어진다. 그런데 시공을 넘어 이러한 일들을 예견한 소설이 있다.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토스카 리가 2019년 집필한 '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는 이 시국에 통렬한 경고장을 던지는 소설이다.

저자의 작품은 여느 소설 같지 않은 매력이 있다. 그의 독자적 세계관은 그저 상상의 발로가 아니라 철저한 자료 조사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다. 특히 '유다'와 '하와' 등의 전작에서 기독교 중심의 소설을 썼던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가상의 사이비종교 '신천국'의 은폐된 현장을 실감나게 창조했다. 또한 의문의 바이러스와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뤘다. 이를 위해 철저한 사전 조사와 더불어 해박한 의학 지식의 산물을 소설 속에 녹여냈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수많은 과학자, 의학자들의 서적과 신문기사 및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참고했다. 2016년 시베리아 야말반도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탄저균이 풀려난 사건, 러시아 과학자가 350만 년 전의 박테리아를 자신에게 주입한 사건 등을 토대로 한 소설은 자연스레 치밀한 전개와 탄탄한 개연성을 갖추게 됐다. 소설의 기반이 되는 팩트를 정리한 작가 노트에는 기후변화로 녹고 있는 영구동토층에 존재하는 고대 바이러스를 경고하고 있다.

소설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으로 현재의 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을 우회적으로 그려낸다.

바이러스를 통해 세상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가진 '신천국'의 교주 매그너스, 그리고 신천국 밖으로 추방당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시작해야 하는 주인공 윈터 로스. 바깥세상으로 나온 윈터가 처음 목격하는 것은 바이러스에 감염돼 광증에 걸린 사람들이 미쳐 날뛰는 모습이다. 마치 2022년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듯 사람들은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다니며 점차 퍼져나가는 전염병을 두려워한다. 공항과 고속도로가 폐쇄되고 지역 전체가 봉쇄되는 모습 역시 우리의 현실과 닮아있다. 불안과 두려움이 고조되며 세상은 점점 멸망으로 치닫는 듯 보인다.

저자가 그려낸 광기에 휩싸인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은 단순히 소설 내에서 존재하는 배경에 그치지 않는다. 소설과 현실이 서로의 경계를 뛰어넘고 뒤섞이며 상호작용할 때 비로소 '라인 비트윈(경계선)'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다시 한번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또한 저자는 '신천국'이라는 가상의 종교단체가 지닌 은폐성과 부조리함을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사이비 종교의 폐단을 엄중히 경고한다.

단순히 감염병 시국을 생생하게 묘사한 것은 물론 액션 스릴러 소설로서도 부족함이 없다. 시카고에서 콜로라도까지 단 한순간도 쉬지 않으며 전력 질주하는 주인공 윈터의 여정은 소설에 짜릿한 속도감을 더한다. 바이러스를 치료할 백신의 원천을 손에 넣은 윈터는 한시라도 빨리 이를 수의학 박사 애슐리 닐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띠게 된다. 시시때때로 타인을 공격하는 광증 환자들이 득실대는 지옥도를 정면 돌파하는 윈터의 대활약은 마치 액션 느와르의 주인공을 방불케 한다.

'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는 코로나 팬데믹 시국에 던지는 저자의 예언서이자 경고장이다. 책장을 덮는 순간 독자들은 소설의 연장 선상처럼 느껴지는 현실의 불안 심리 때문에 또 한 번 섬뜩해질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코로나19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비밀스러운 사이비 종교는 곳곳에 존재하고 영구동토층은 녹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이 소설처럼 영구동토층의 바이러스가 깨어나 새로운 감염병의 시대가 도래할까? 걱정하지 말자. 이건 소설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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