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조선, 아내 열전…사화·당쟁 헤쳐나간 여성들의 생존전략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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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1   |  발행일 2022-01-21 제14면   |  수정 2022-01-21 07:55
조선 500년간 수많은 변곡점
사대부家 아내의 삶 들여다봐
일부 성리학 지식인 자리매김
남편의 '知己' 역할 해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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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경에 그려진 윤두서의 '독서미인' 일부. 〈칸옥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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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의 아들 윤덕희가 그린 '독서하는 여인' 일부. 〈서울대박물관 제공〉

조선 역사 500년 동안 사화와 당쟁, 외침(外侵) 등 수많은 역사적 변곡점이 있었다. 역사가인 저자는 많은 사람의 과거를 되돌아본 끝에 자신의 가족을 떠올렸다. 그는 할머니, 어머니의 모습이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역사와 겹쳐 보인다고 자주 느꼈다. 이에 저자는 우리 역사에서 그 흔적을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운 아내의 목소리를 들여다보게 됐다.

저자는 조선사에서 변화하는 아내의 삶을 조명한다. 그는 각종 역사적 문헌에서 아내와 관련된 서술을 모아봤다. 그 결과 크게 3가지 사실이 드러났다. 첫 번째는 조선의 아내가 다양한 생존전략을 펼쳤다는 것이다. 성리학이 조선의 지배 개념이 되자 일부 사대부 여성들은 성리학적 교양을 쌓은 지식인이 됐다. 반면 어느 순간에는 남성의 지배에 순종하는 듯했지만, 가정의 실권은 쥐고 있었다.

두 번째는 역사 속 아내들이 의외로 능동적이었다는 것이다. 세상이 남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에 이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관철할 때가 많았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은 삶의 조건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순순히 항복하지 않았고 무조건 포기하는 일도 없었다. 마지막으로는 조선 시대에도 남성과 여성은 사회문화적 상황이 바뀔 때마다 상대에게 새로운 역할을 주문해왔다는 것이다. 아내의 역할 또한 조금씩 다르게 정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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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지음/시대의창 /296쪽/1만6천800원

책에선 14세기 말부터 19세기 말까지 일어난 아내의 역사를 모두 15개의 이야기에 담았다. 첫 번째로는 고려 말의 성리학자 목은 이색과 그의 부인 안동 권씨를 소개한다. 권씨 부인은 불교적 가치관의 소유자로서 남편 이색과 함께 누구보다 정답고 평온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말년에는 왕조 교체로 급격하게 추락한다. 두 번째는 조선 초기 훈구파를 대표하는 문인 서거정과 그의 아내 선산 김씨다. 김씨 부인은 남편의 가장 좋은 술친구였다. 그들의 삶에는 고려의 유풍이 아직 진하게 남아있었다.

세 번째 이야기부터는 이전 시기와 다른 모습이다. 성리학계 거장 점필재 김종직의 아내 창녕 조씨는 남편과 가치관을 공유하며 여성 선비의 모습을 보였다. 16세기부터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진다. 미암 유희춘의 아내 송덕봉은 남편의 '지기(知己)'로서 남편과 시를 주고받았다. 그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은 문화예술의 주역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흐름이 달라진다. 신분에 상관없이 그 시대에는 절개를 지키다가 죽은 아내들이 많았다. 여기에 당쟁이 격화되면서 더욱 억압적인 분위기가 되고, 이런 상황에서도 아내들은 삶의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18세기에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벗어나려는 선각자들이 등장한다. 실학자 성호 이익은 여성과 가족의 삶과 관련한 현실 문제를 실용적이고 합리적으로 풀어갈 방법을 찾아가려 한다. 또 다른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열녀병' '남편 따라 죽기' 현상의 본질을 들여다본다. 그는 이 문제에서 핵심은 과부가 처한 사회경제적 위기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책의 마지막은 신지식인 혜강 최한기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여성과 가정의 문제를 서구의 과학적인 태도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 책이 전하는 아내의 삶은 인물 하나하나에 대해 깊게 바라보는 것을 넘어선다. 저자는 여성에 관한 당대 지식인의 담론도 함께 다뤄 당시 아내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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