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두 원로 배우가 남긴 것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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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5   |  발행일 2022-01-25 제27면   |  수정 2022-01-25 07:22

'근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세잔(1839∼1906)과 소설 '목로주점' 등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자연주의문학의 거장 에밀 졸라(1840~1902)는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였다. 집이 부유했던 세잔은 가난했던 졸라와 달리 큰 어려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성공과 영광은 졸라에게 먼저 찾아왔다. 승승장구하는 졸라와 달리 세잔은 이름 없는 화가로 고향에서 그림만 그리며 지냈다. 구도가 맞지 않는 형편없는 그림을 그린다는 비아냥을 참아가며 작업에만 매달렸던 그는 말년이 돼서야 큰 명성을 얻었다. 그의 고집스러운 화풍은 근대 회화의 새장을 열었다.

초현실주의 탄생에 큰 영향을 끼친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1844~1910)는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지 않았다. 평일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일요일에만 그림을 그렸던 그는 아마추어 화가로 여겨져 오랫동안 미술계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원시적 화풍은 비평가들에게 비웃음의 대상도 됐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말년에 호평을 받았고 현대미술 탄생의 신호탄 역할을 했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오영수가 한국 배우 사상 최초로 골든글로브 연기상을 받았다. 이에 앞서 윤여정이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 또한 한국 배우로는 처음이다.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나이 일흔이 넘은 원로 배우다. 대중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다가 작품 하나로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이들의 내공은 대단하다. 삶의 깊이가 묻어나는 연기력으로 이 분야에서는 일찌감치 대배우로 인정받았다. 그 사실을 대중이 미처 알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긴 세월 묵묵히 자기 역할을 다해왔기 때문에 이들의 수상은 더 값지다. 이는 삶과 예술의 승리다. 뒤늦게 주목받은 이들을 보면서 세잔·루소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대기만성형 예술인이라는 이유만은 아니다. 기다릴 줄 아는 의지, 힘들어도 버텨내는 용기, 이를 만드는 예술의 힘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파블로 피카소의 말처럼 위대한 예술은 언제나 고귀한 정신을 보여준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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