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의료용 약물서 불법 약물로 운명이 바뀐 마약류는

  • 이향이 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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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5 08:00  |  수정 2022-01-25 08:06  |  발행일 2022-01-25 제21면
2차대전 때 피로해소제로 쓴 필로폰
심각한 중독 피해로 금지약물 지정
미국·유럽 가정상비약이던 '진정시럽'
아이사망 원인으로 밝혀져 판매금지

이향이
이향이 (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장)

현재 우리나라는 600여 곳이 넘는 업체에서 2만8천200여 품목에 이르는 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다. 물론 사용 빈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현대인들에게 있어 건강을 지키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물품 중의 하나에 의약품도 포함되리라 생각한다.

수많은 의약품 중 한때는 탁월한 효능으로 인해 기적의 약으로까지 불리다 어느 순간 치명적인 위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 밝혀지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약들도 종종 등장하는데 그중에는 마약류에 속하는 약물도 여러 가지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필로폰'을 들 수 있다. 지금이야 가장 유명한 마약류의 일종으로 그 지독한 중독성으로 인해 악명 높은 불법 약물이라는 것을 대부분 알고 있지만, 처음 개발 당시에는 아주 우수한 효능을 지닌 의약품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필로폰은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제약회사에서 출시한 상품으로 군인이나 군수공장 노동자들의 피로를 풀어주고 잠을 쫓고, 전투 및 생산 의욕을 높이는 피로 해소제, 각성제로 사용했다. 이후 일본뿐만 아니라 연합국 등 진영에 상관없이 다른 국가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됐으니 전쟁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종전 이후 중독으로 인한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군인뿐만 아니라 일반인 사이에도 퍼져나가면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자 이후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지약물로 지정됐지만, 그로 인한 중독피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약의 부작용과 중독성을 무시한 채 오로지 그 효능만을 추구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보여주는 명확한 예시가 되고 있다.

좀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849년 미국의 간호사 출신인 샬롯 윈슬로 부인이 제조한 특허약으로 19세기~20세기 초 미국과 유럽의 가정에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의약품으로 명성이 높았던 '윈슬로부인의 진정 시럽'이 있다. 이 약품은 뛰어난 진통, 진정 효과로 인해 군인들의 부상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통증을 치료하고 잠재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약이 되어 시중에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동이 나고 윈슬로부인은 '고통의 해방자'로까지 추앙받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후 아이들의 갑작스러운 사망사고가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사인을 조사하던 중 진정 시럽이 원인이고 그 약은 양귀비를 원료로 제조했기에 아편, 모르핀이 주성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많은 희생 끝에 1911년 약의 판매가 금지되면서 비극의 막을 내렸지만 60여 년간 강력한 마약을 영유아들에게까지 사용했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경험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층의 마약류 사용이 급증하고 있고 사용 약물의 종류도 아주 다양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당연히 마약류 관련 법률위반으로 처벌을 받는 마약류 사범 중에서도 20~30대 연령층의 비중이 확연히 증가하여 전체 사범 중 거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교육이나 상담을 통해 만나는 마약류 사범들, 그중에서도 특히 젊은 층의 경우 '마약'이라는 약물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안타깝고 염려스럽다. 자신의 행위가 법률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 가족, 주변인, 나아가 사회, 국가 전체에 큰 위해를 끼치는 행위라는 걸 잘 알지 못한다.

호기심에 한두 번 사용해봤을 뿐이니 언제든 약물을 중단할 수 있고 젊고, 건강에도 자신이 있으니 아무리 마약류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피해에 관해 이야기해도 자신만은 예외라고 생각하곤 한다. 잘못 알고 잘못 사용한 약물, 특히 중독성 유해 약물로 인한 피해는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이향이 (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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