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도담삼봉과 소나기 마을

  • 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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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2-23   |  발행일 2022-02-23 제26면   |  수정 2022-02-23 07:08
삼봉 정도전을 품은 단양군
양평 소나기마을과 황순원
성공의 열쇠는 스토리텔링
지역 역사적 자원 발굴·가공
관광산업 발전에 앞장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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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

단양의 명소인 도담삼봉에 가면 남한강 속 바위 봉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정도전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조선 개국 공신인 정도전의 호가 삼봉(三峰)이다. 단양군은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도담삼봉에서 따왔다고 주장하며 그 앞에 공원을 조성하고 좌상을 앉혔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단양의 대로는 삼봉로로 골목길은 도전 1길, 도전 2길이라는 식으로 거리명을 붙여두고 있다.

그러나 정도전의 호 삼봉은 도담삼봉에서 따온 것이 아니다. 개성에서 바라본 북한산 일원의 삼봉이다. 정도전이 지은 시 중에는 삼봉을 소재로 한 시가 여러 편 있다. '삼봉에 올라'라는 시에서는 산마루에서 송악산을 바라보는 감회를 노래하고 있다. 그는 한때 북한산 자락에 삼봉재를 짓고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곳에서 시작해 개성공단 안을 흐르는 개울이 삼봉천이다.

정도전은 봉화정씨요 오늘의 행정구역으로는 영주 출신이다. 정도전의 외가는 단양이기는 하다. 그러나 정도전은 어머니의 가계가 비천하다는 이유로 공직 생활에서 많은 불이익을 받았으므로 단양과의 관계는 오히려 콤플렉스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객관적 사실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영주에서도 정도전을 기려 생가인 삼판서 고택을 복원하고 창작물도 만들고 있지만 단양은 정도전과 관련해 야사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조합하여 정도전을 아예 단양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 사실에 대한 해석이요 현시점에서 그 해석에 부여하는 의미이다. 숨겨져 있는 스토리는 그냥 스토리일 뿐이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처럼 내가 그 이름을 불러줄 때에만 그 꽃 바로 그 스토리는 나에게 와서 의미가 되고 몸짓이 되는 것이다.

역사적 자원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 만들기는 지역 주민이나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훌륭한 관광 상품이 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 내 역사나 문화유산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도 상관없다. 문학작품의 배경도 좋은 소재가 된다. 양평에 가면 소나기 마을이 있다. 황순원 문학관을 비롯하여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여러 장면들을 전시하고 있다. 황순원의 무덤도 이장해 모셔놓았다. 여름이면 인공 소나기를 맞고 근처 원두막이나 수숫단 속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만들어 추억에 젖는 중장년층과 추억을 만들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황순원은 평남 대동군이 고향이다. 그런데 왜 황순원 문학관이 양평에 있을까? 소나기의 마지막 즈음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 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소녀는 죽었지만 소녀 네는 양평 소나기마을에 정착한 것이다.

다행히 대구경북은 역사물의 보고이자 스토리의 창고다. 긴 역사와 문화의 다양성이 제공하는 재료가 주변에 풍부하게 널려 있다. 신화시대와 통일신라를 거쳐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과 광복 후 산업화를 선도하는 과정에서 곳곳에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을 잘못 밀어붙이면 지역주의나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하고 심하면 역사 왜곡으로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독도 망언처럼 없는 것도 만들어 견강부회하면서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그 예다. 그러나 남들은 없는 것도 창조해내고 남의 것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도 제대로 지키지 못 한데서야 말이 되겠는가. 곳곳에 숨겨진 자랑스러움이 사라지기 전에 발굴 가공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산업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우리의 책무이다.
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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