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태의 제3의 눈] 방콕, 흔들리는 이름이여!

  •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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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2-25   |  발행일 2022-02-25 제22면   |  수정 2022-02-25 07:12
방콕서 끄룽텝마하나콘으로
타이 정부, 수도 명칭 바꿔
시민사회의 동의 없이 진행
쿠데타로 권력 쥔 현정부서
옛 버마 독재군부의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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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분쟁 전문기자

'끄룽텝마하나콘 아몬랏따나꼬신 마힌타라윳타야 마히딜록폽 높파랏라차타니부리롬 우돔랏차니웻마하사탄 아몬피만아와딴사팃 삭까타띠야윗사누깜쁘라싯'

따라 읽기도 숨 가쁜 이 문장은 기네스 세계 기록에 오른 가장 긴 지명이다.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가 뒤섞인 그 속뜻은 '천사의 도시, 위대한 도시, 장엄한 보물의 도시, 난공불락 인드라(힌두 신들의 왕)의 도시, 아홉 보석(왕실과 불교 상징)의 도시, 행복한 도시, 왕궁(화신한 신의 집)의 도시, 인드라의 뜻을 받든 비슈와까르만(힌두 장인의 신)이 세운 도시'쯤 될 법.

이게 흔히들 끄룽텝마하나콘이라 줄여 부르는 방콕의 다른 이름이다. 한데 이 수도 이름을 놓고 요즘 타이 사회가 들썩인다. 지난 15일 내각이 "총리실 자문기구인 로열소사이어티의 결정에 따라 이제 방콕을 공식적으로 끄룽텝마하나콘(Krung Thep Maha Nakhon)이라 부른다"고 밝히면서부터다. 곧장 여론이 술렁이자 내각은 "끄룽텝마하나콘을 쓰고 괄호에 방콕을 넣겠다"는 대안을 내놨고, 문화장관 잇띠폰 쿤쁠럼은 "지금은 둘 가운데 어느 것이든 쓸 수 있다"며 눈치를 살폈다.

"끄룽텝마하나콘이 그저 상징어라면 방콕은 오랫동안 나라 안팎에서 굳어진 통용어다. 코로나로 다들 힘들어 아우성치는 이 어려운 판에 왜 난데없이 수도 이름을 바꿔야 하나?" 언론인 솜밧 빽손따윗 말마따나 정부는 아무 탈 없이 써온 방콕을 왜 끄룽텝마하나콘으로 바꿔야 하는지 또렷이 밝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콕이란 게 외래어거나 무슨 군티가 있는 말도 아니다. 타이어 방꼬(냇가 마을+섬)나 방마꼭(야생 올리브)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여겨온 방콕은 이미 16세기부터 터를 잡았고, 사람들은 방콕을 입에 달고 살아왔다. 현재 방콕 지역정부도 공식적인 영문 표기로 방콕메트로폴리탄행정부(BMA)란 말을 쓰듯이.

"이름만 바꾼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사회적·경제적 비용이 엄청나게 든다. 행정과 외교뿐 아니라 방콕은행, 방콕대학, 방콕항공, 방콕호텔, 방콕포스트… 이거 다 어떻게 할 건가?" 경제학자 니띠 로왓따나는 명분 없는 공적·사적 재원 낭비를 거세게 나무랐다.

본질은 따로 있다. 정부가 시민사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채 이름을 바꿨다는 대목이다. 여기, 2014년 쿠데타로 권력을 쥔 타이 총리 쁘라윳 짠오차 정부한테서 버마 독재 군부의 냄새가 난다. 1989년 버마 군부가 시민 몰래 나라 이름을 미얀마로, 수도 이름을 랭군에서 양곤으로 바꾸는 똑같은 짓을 했다.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오늘까지 버마 안팎에선 여전히 많은 이들이 반군부 상징으로 옛 이름을 써왔고.

버마 군부가 그렇듯이, 애초 정치적 합법성 논란을 겪어온 쁘라윳 정부고 보면 느닷없는 수도 이름 변경이 수상쩍을 수밖에. 가뜩이나 전체주의 낌새를 드러낸 쁘라윳을 떠올리면 더 그렇다는 말이다. 게다가 요즘 방콕 언저리엔 왕실을 끼고 군부가 새판을 짠다는 소문이 나돌고도 있다. 존경받아온 전 국왕의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건데, 다른 말로 타이 현대사를 주물러온 왕실과 군부의 전통적 공생관계를 더 두텁게 하겠다는 뜻이다. 왕실과 종교로 덧씌운 끄룽텝마하나콘이 그 징표가 아닌지 의심하는 까닭이다. 왕실, 불교, 군대의 삼위일체 앞에 필연적으로 쪼그라들 시민사회가 못내 걱정스럽기만.

방콕이 호락호락 사라질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앞으로 끄룽텝마하나콘을 만나더라도 헷갈리지 마시길!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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