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광장]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이재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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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2-25   |  발행일 2022-02-25 제23면   |  수정 2022-02-25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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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동 변호사

런던정경대학교의 교장인 경제학자 미누체 샤피크는 팬데믹 이후 세상의 변화를 다룬 '서로에게 빚지고 있는 것들(What We Owe Each Other)'이란 책을 발간했다. 그녀는 이 책에 관한 인터뷰에서 심각한 세대 간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으로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은 젊은 사람들의 투표의 가치를 노인들의 것보다 더 높게 평가한다는 급진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각각의 한 표가 다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노인들에 비해 이 나라에서 더 긴 시간을 살아가야 할 젊은이들의 한 표에 몇 배의 가중치를 준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실현되기 힘든 과격한 발상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수긍할 만하기도 하다. 앞으로 일어날 세상의 변화에 관하여 노인들보다 청년들이 더 많은 이해관계와 관심을 가지며 따라서 더 큰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면 기후 위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지만 이는 지금의 노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할 동안에 일어날 당면한 문제는 아니어서 젊은이들만큼 절박하지 않다. 한 시위에서 어린 소녀가 든 피켓의 문구는 이런 세대 간의 갈등을 잘 보여준다. "당신은 늙어 죽겠지만 나는 기후 위기로 죽을 것입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부모 세대에 비해 더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아야 할 역사상 첫 세대라는 말이 있다. 우리 세대들은 대부분 가난하게 자랐고 힘들게 공부하였지만 좋은 직장을 구하거나 재산을 일구는 기회는 풍부한 세상에 살았다. 고도성장이 정체되고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젊은 세대들은 들인 노력과 비용에 비하여 얻는 기회가 제한된 데 반하여 져야 할 부담은 더 늘게 되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에 대하여 느끼는 분노는 기득권층인 베이비붐 세대들이 고령화되면서도 그 수의 우위로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면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정치적 우위에 두는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18세 이상의 유권자 중 60세 이상의 고령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이르고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 심해질 것이고 세대 간의 갈등도 더 증폭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곧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도 60세 이상의 투표성향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유권자의 비중이 높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치우친 성향이 젊은 세대들의 성향과 대립되고 있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이 늙어가면서 세상의 급격한 변화를 바라지 않고 이미 가진 것을 지키려는 보수적인 경향을 띠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이러한 보수성이 사회의 주류가 된다면 그 사회는 적응력과 역동성이 떨어져 뒤처지고 도태될 것임은 자명하다.

철인 플라톤이 '노인은 다스리고, 젊은이들은 복종한다'라고 하였다지만, 이는 세상의 변화가 느리고 지식의 축적이 빈약해서 연장자의 경험이 중요했던 먼 과거의 일이다. 우리 사회가 노령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나를 포함한 노인 세대가 아집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사회의 변화를 따라잡기 위하여 공부하고 깨우치며 젊은 세대의 입장에서 자신이 없어진 이후의 먼 미래를 고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노인의 생각이 지배하고 노인의 이익이 우선되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미래가 없다.
이재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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