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시대공감] 나훈아, 스스로를 유배 보낸 '가황'

  •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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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04   |  발행일 2022-03-04 제22면   |  수정 2022-03-04 07:27
울림주는 데뷔 55주년 앨범
젊은 감성 뮤직비디오 호평
창작위해 세상 뒷말도 감내
원로가수의 끊임없는 도전
가요계 후배들에 큰 울림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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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나훈아의 새 앨범이 각별한 울림을 주고 있다. 데뷔 55주년 기념 앨범 '일곱 빛 향기'다.


나훈아는 현재 만 75세다. 이런 원로 가수가 새 앨범을 낸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앨범 한 장을 내기 위해선 많은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요즘엔 젊은 가수들도 앨범 출시는 기피하는 추세다. 보통은 간편하게 디지털 싱글 위주로 활동한다.

반면에 나훈아는 지속적으로 앨범을 낸다. 원로 가수들은 보통 과거 히트곡들 위주로 디너쇼나 익숙한 행사 무대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훈아는 앨범을 내고 또 체육관 투어까지 진행한다. 업계에서 놀랄 정도로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앨범 출시 자체만 해도 놀라운 일인데 더 놀라운 건 수록곡들을 모두 자작곡으로 채운다는 점이다. 지난 앨범에 이어 이번 앨범도 전곡이 자작곡들로 구성됐다. 그리고 거기에서 히트곡들을 탄생시켜 더욱 놀라움을 준다. 창작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시장에서 인정받는 성공작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2017년엔 '남자의 인생'을 히트시켰고, 2020년엔 '테스형' 열풍을 일으켰다. '명자'와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도 명곡으로 자리매김했다. 원로 가수가 이렇게 지속적으로 히트곡을 새로 만드는 경우는 매우 보기 드물다.

나훈아의 도전 정신도 놀랍다. 이번 앨범에선 젊은 감성의 뮤직비디오에 도전했다. 트로트 가수의 뮤직비디오는 보통 노래 부르는 모습을 그대로 찍어 간소하게 제작한다. 그런데 나훈아는 이번 뮤직비디오를 마치 한류 스타의 영상처럼 만들었다. 처음 공개한 '맞짱' 뮤직비디오는 판타지 액션드라마처럼 만들어 인터넷에서 화제를 일으켰다. 미국 넷플릭스 드라마 '더 위쳐'의 등장인물 게롤트와 뮤직비디오 속 나훈아의 모습이 비슷하다면서 젊은 누리꾼들이 나훈아를 코리안 게롤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두 번째로 공개한 '체인지' 뮤직비디오도 파격적이다.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EDM 감성을 담아 국내 최고의 팝핑 댄스 크루인 '월드 페임 어스(WORLD FAME US)'와 협연했다. 물론 한류 아이돌의 영상하고 나란히 비교할 순 없겠지만 이러한 시도 자체가 이례적이다.

나훈아는 언제나 최고의 노래, 최고의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런 창작 이외엔 섣불리 이미지 소모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반 연예프로그램에서 보기 어려웠다. 이런 나훈아의 모습을 일각에선 신비주의라고 하면서 희화화해왔다. 하지만 나훈아가 걸어온 길을 그렇게 가볍게 평가하는 건 부당하다.

창작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한다. 도전도 그렇다. 나훈아는 그런 창작과 도전의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 형극의 길을 걸어왔다. 창작하며 은둔하는 기간 동안 쏟아지는 세상의 뒷말들도 감내했다. 오로지 창작을 위해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유배 보낸 것이다.

원로가 되면 흔히 윗자리에 앉아서 요즘 세태를 탓하기만 한다는 인식이 있다. 반면에 나훈아가 보여주는 모습은 언제나 최전선에서 도전하는 것이다. 윗자리가 아닌 앞자리에서 전진을 멈추지 않는다. 바로 이런 원로의 모습에 젊은 세대가 열광한다. 이번 앨범에서도 전진하는 나훈아의 진면목이 나타났다.

우리 대중문화계는 서구에 비해 조로 현상이 심했다. 40대만 넘어가도 최신 히트 콘텐츠의 창작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래서 나훈아의 한 걸음 한 걸음이 가요계 후배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나훈아의 행보는 모두 역사가 되고 장차 많은 후배들이 그가 간 길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꼭 대중문화계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도 끝까지 도전하는 삶의 소중함을 나훈아가 전해주고 있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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