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봉의 신파와 미학 사이]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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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08   |  발행일 2022-03-08 제22면   |  수정 2022-03-08 07:09
한류·K-콘텐츠의 선한 영향력
韓영화·드라마 작가 작품 통해
세상 바꾸는 아름다운 힘 제시
마초 같은 한국 남성 변화시켜
韓대중예술 상업적 성공 넘어
한류의 철학적 의미·가치 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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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철학과 교수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자연미와 예술미를 구별하면서, 예술에 대한 식견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의 도덕성을 증명해주지는 않지만, 한 송이 들꽃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동을 느끼는 것은 언제나 틀림없이 선한 영혼의 징표라고 말했다. 칸트는 이 말을 통해 완곡하게 예술이 인간의 도덕성 함양에 그리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비슷한 생각을 루소는 더 과격하게 표현했는데, 프랑스 디종학술원이 제시한 '학문과 예술의 부흥은 풍속을 순화하는 데 기여했는가, 아니면 문란하게 하는데 일조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현상논문에서 그는 단호하게 "학문과 예술이 발전을 거듭함에 따라 우리의 영혼은 타락했다"고 주장했다.(루소, 김중현 옮김,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외', 40쪽)

굳이 유명한 철학자들의 권위에 기대지 않더라도 예술이 사람의 선량함과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은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영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막지 못했고, 베토벤과 괴테의 예술이 히틀러가 불 지핀 독일인들의 광기를 조금도 제어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예술이 인간의 도덕성 함양에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것은 더 증명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이즈음 한류 또는 K-콘텐츠에 대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따라붙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표현은 참으로 기이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왜냐하면 누구도 할리우드 영화를 열심히 본다고 해서 사람이 선량해지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감동을 주는 노래도 영화도 많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나라의 대중 예술을 통틀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말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로 한국의 유행가나 드라마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말일까? 아니 그보다 한류의 선한 영향력이라는 것이 진짜로 있기는 있는 것일까?

이렇게 자문해 보니 문득 한 20년 전에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분과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난다. 그분은 동남아에서 들으니, 미혼 여성들에게 한국 남자와 결혼하라는 말은 가장 심한 욕이라더라고 말했다. 까닭을 물으니 이랬다. 당시 많은 한국인이 동남아 여행을 갔는데, 부부가 같이 뷔페식당 같은 데서 식사를 하면 어김없이 남자들은 테이블에 앉아 저들끼리 먹고 마시고 부인들은 여행지에서도 제비가 새끼들을 먹이듯이 부지런히 음식을 날라 남편들을 먹이는데, 그걸 보고 동남아 처녀들이 질색을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과거인데, 그 시절 한국 남자들은 부드럽고 가정적인 동남아 남자들에 비해 그렇게 거칠고 교양 없는 마초로 비쳤던 것이다. 남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만이 아니다. 그러고 나서 몇 년 뒤 내가 베트남에 처음 갔을 때 나는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폭력적인 노무관리를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한 어느 젊은 여성 학자로부터 학회가 끝난 뒤 한국 남자들이 원래 그렇게 폭력적이냐는 질문을 받은 일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즈음 동남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한국 남자들이 마초들이라는 고정관념은 거의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도리어 지난해 한꺼번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26개 한국어 낱말 중 하나인 '오빠'는, 이 낱말이 전 세계적으로 세련되고 매력적이며 다른 무엇보다 여성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젊은 남성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오빠'는 '젠틀맨'이라는 낱말보다 훨씬 더 낭만적으로 들린다. 그러니 이 나라 저 나라 젊은 여성들에게 한국 오빠들에 대한 환상이 생긴다 해도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게 고작 20년 사이의 변화다. 그 짧은 시간에 한국의 청년들이 조야한 마초에서 의젓한 '오빠'가 된 것이다. 청년들만 변한 것이 아니다. 가족이 식당에 가면 불판 앞에서 고기를 굽는 것은 거의 다 남자들이다. 구조적인 성차별이 여전히 남아 있고, 그런 점에서 여성과 남성의 평등한 만남을 위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지만, 적어도 개인적인 관계에서 보자면 나는 한국의 평균적 남성들이 그렇게 비난받아야 할 정도로 반여성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보자면, 이즈음 대선 국면에서 악착같이 여성과 남성을 적대적으로 대립시키면서 페미니즘이나 반페미니즘으로 표를 얻으려는 정당들의 행태는 의도가 불순한 선동이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한국의 남자들을 마초에서 '오빠'로 변화시켰을까? 이렇게 물으면 드라마 말고 다른 원인을 찾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 대위가 한쪽 무릎을 꿇고 말 없이 강모연의 신발 끈을 매어주던 장면처럼, 한국의 드라마는 남성적인 힘이 여성에 대한 부드러운 배려와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름답게 그려 보여준다. 누군들 그런 장면을 보고 닮고 싶지 않은 남자가 있겠는가?

도덕은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고 강요한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타율적 명령은 우리에게 반발심을 불러일으킨다. '정치적 올바름'의 이름으로 강요되는 이런저런 가치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명령하거나 강요하지 않으면서 우리를 매혹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자기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생경한 도덕이 아니라 아름다움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작가들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변화시켜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아름다움이 가진 그 힘을 증명해 왔다.

하지만 그 비결이 무엇일까? 예술이 아름다움을 형상화해서 보여주는 것이라면 그런 예술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러나 예술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이전에는 듣기 어려웠던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차이가 한국의 대중 예술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든 것일까? 이것은 오늘날 한류 현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지한 철학적 물음이다. 그리고 이처럼 한류가 단순히 상업적인 성공을 넘어 우리에게 전에 없던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의 대중예술이 지닌 보다 깊은 의미와 가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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