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의 정변잡설] 대학이 아닌 길을 택한 젊은이에게

  • 정재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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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09   |  발행일 2022-03-09 제26면   |  수정 2022-03-09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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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변호사)

집안 여동생의 아들, 생질이 인턴을 시작한다는 연락을 받은 게 한 달쯤 되었다. 지 아비가 빚만 남기고 일찍 죽어서 남은 처자식들이 고생했다. 다행히 정부에서 방 두 칸이 있는 신축빌라를 주거 지원책으로 내주어서 밤이슬은 피하게 되었지만, 살림살이가 거처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동생은 보험모집인 일도 하고 피부 미용일도 하면서 호구지책에 항상 노심초사했다. 일전 아들이 인턴 간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늘 그늘이 있던 그 얼굴에 볕이 드는 것 같아 나도 기분이 좋았다.

인턴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현장 실습생이다. 집안 형편 때문에 그 녀석은 고등학교 진학 때 일찌감치 실업계를 택했다. 들어보니 특성화고인데 달성군 어디에 있대서, 어떻게 통학할 거냐고 물으니 기숙사가 있단다. 그 후 가끔 주말에 외출 나온 아들을 기숙사로 데려다주었다는 식의 안부만 들었는데, 벌써 밥벌이하는 사회인이 다 되었다는 말을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누구는 남들 다가는 대학도 못 가고 고졸 기술자로 살아야 되니 인생사가 팍팍하겠다는 걱정도 할 것이지만 동생은 생각이 다르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뺑뺑이 돌면서 사교육에 부모 등골을 다 빼먹고 간 대학, 졸업해도 반백수거나 최저임금 근처, 거기서 거기 아니냐. 차라리 일찍 사회 나와서 학교에서 배운 기술에 차근차근 더하다 보면 아무도 무시하지 못할 알짜배기가 될 것"이라면서 대학생이랍시고 남들 겉멋 부릴 때 돈 벌면서 경력 쌓겠다는 아들의 선택이 훨씬 윗길이란다.

1970~80년대 성공의 고속도로였던 '대학'을 젊은 학부모들은 다른 양상으로 소비하고 있음을 동생의 말에서 읽는다. 이처럼 사회는 변하고 있다. 지식과 정보와 기술이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소비되면서 대학 교육의 독점적 지위는 진작부터 흔들리고 있다. 희소하기는커녕 벚꽃 피는 순으로 소멸하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대학은 식상해져 버렸다.

대책 없는 진학보다 취직이라는 그 생각이 옳다. 그러나 회사생활에 이력이 붙었을 때도 여전히 같은 생각일까. 통장 잔고만으로 '고졸'이라는 열패감을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에도 불구하고 벚꽃처럼 스러진다는 존재에 청춘을 기대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는 데 동의한다. 흔한 현수막 따위로 축하받지는 못하지만, 둥지를 떠날 날갯짓에 바쁜 수많은 예비 고졸 회사원의 건승을 믿는다. 결핍이 결핍된 무기력한 세대에서, 결핍투성이인 초년생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을 것이고 가는 그 길은 꽃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축하한다. 무실역행으로 담대하게 가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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