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우리 문화 박물지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한국문화' 반전 매력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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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11   |  발행일 2022-03-11 제14면   |  수정 2022-03-11 07:59
점잖음 내포한 갓…일탈의 효과 엿장수 가위
거문고·보자기·호랑이·논길·자연 등
한국인 흔적 담긴 63가지 유무형의 자산 탐색
쓰임새뿐 아닌 숨겨져 있는 상징성 찾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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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 박물지'의 저자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엿장수의 가위를 서로 다른 것을 결합하는 융합의 상징물로 본다. 갓은 일종의 점잖음을 보여주는 도덕성이면서 인격과 정신을 표현하는 언어라고 해석한다. (디자인하우스 제공)

지난 2월 이어령의 병색은 완연했다. 기력은 부쩍 사그라들어 있었고 얼굴은 야위어 초췌했다. '우리 문화 박물지'의 최종 교정쇄를 펼쳐 보던 그의 손은 가볍게 떨렸다. 


몸을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누운 채였다. 그는 떨리는 손을 억누르며 교정쇄 첫 장에 짧은 메모를 남겼다. '내 마지막 동행을 스캔한 영혼의 동반자'. 짧지만 울림이 큰 메시지였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우리 곁을 조용히 떠났다.

'우리 문화 박물지'는 지난달 26일 별세한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과 '마지막을 동행'한 책이다. 2007년 첫 출간된 이후 수많은 독자에게 한국 문화의 길잡이가 된 책을 새롭게 단장해 내놓은 개정판이다. 

평생을 한국의 문화 원형 연구에 힘쓴 이어령 특유의 시적 직관과 상상력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다. 미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이어령 글쓰기'의 면모도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갓, 거문고, 보자기 등 우리 고유의 생활용품부터 호랑이, 논길, 박과 같은 자연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의 삶의 흔적이 담긴 63가지 유무형의 자산에 대한 탐색기다. 한국인의 모습과 생각, 혼과 마음을 읽어 낸 '우리 문화 독해서'이기도 하다. 사전과 역사책에서도 읽을 수 없는 독창적인 문화 해석을 엿볼 수 있다.

표지
이어령 지음/ 디자인하우스/ 280쪽/ 1만6천원

저자는 대대로 손때가 묻어온 도구를 다각도로 탐색한다.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살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이 갖는 상징성과 이데올로기적 메시지, 도덕성을 포착한다. 


또 도구의 만듦새와 쓰임새, 만들어진 연원 등을 분석하며 그것을 둘러싼 층위를 하나씩 파헤쳐나간다. 뒤집어 보고, 들춰 보고, 견주어 보는 과정을 통해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는 의미를 굴착한다. 

한 켜를 들여내어 우리가 지나치고 간과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다른 켜를 뒤집어 보며 단점이라고 여겼던 부분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기도 한다.

달걀을 반만 싸서 밖으로 드러낸 달걀 꾸러미에서는 기능성과 정보성 그리고 대조와 조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대충대충 짜서 틈이 벌어진 한옥의 문에서는 문풍지 소리의 정취를 즐기는 한국인의 마음을 찾아낸다. 선비들의 갓은 일종의 점잖음을 보여주는 도덕성이면서 인격과 정신을 표현하는 '머리의 언어'라고 정의한다. 엿장수의 가위 역시 서로 다른 것을 결합하는 융합의 상징물로 본다.

'가위는 무엇을 자르기 위해 고안된 도구이기 때문에 자연히 악역 노릇을 해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랑받지 못한 가위의 이미지를 역전시켜 그 일탈의 시적 효과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한국의 엿장수 가위다.(중략) 엿장수 가위는 자르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내는 음향효과에 그 기능을 두었기 때문이다. 절단 작용을 청각 작용으로 전환시킨 순간 가위는 악역에서 정겨운 주역으로 바뀌게 된다. (중략) 그리고 그 가위는 무엇이 잘리는 공포, 프로이트가 말하는 거세 콤플렉스의 불안이 아니라 오히려 듬뿍 덤을 주는 훈훈한 인정을 느끼게 한다'-가위: 엿장수 가위의 작은 기적 중에서-

저자는 글을 맺으며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그것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기울일 것을 주문한다.

"우리는 사물을 보지 않는다.(중략) 그러기 때문에 사물의 형태나 빛깔 그리고 그것들이 끝없이 우리를 향해 말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듣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시선을 멈추고 어떤 물건이든 단 1분 동안만이라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어김없이 먼지를 털고 고개를 치켜들 것이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순간처럼 전연 낯선 얼굴로 우리 앞에 다가설 것이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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