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한의 사람과 선(線)] 다시 찾아온 봄의 선물…반짝 피었다 가는 아름다운 그 꽃, 매화

  • 김채한 전 달성문화재단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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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18   |  발행일 2022-03-18 제38면   |  수정 2022-03-1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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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아흐레 전이다. 20대 대통령 선거 개표하던 날 밤. 대한민국의 밤은 길었다. 혈투였다. 자정을 넘겨 두 대선후보가 서로 역전되자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더 조마조마해졌다. 쉽게 잠들 일이 아니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결코 깨지지 않던 그 '근소한 차이'가 기어이 결판을 낸다. 새 대통령이 탄생 된 순간이다.

그 새벽 그즈음. 봄을 알리는 매화나무에도 통통한 매화꽃 망울들이 서로를 훔치며 터질 준비로 그 순간들을 기다리고 있었을 터. 예전보다 개화가 좀 늦은 감은 있다. 지난겨울의 혹독과 긴 가뭄 탓이다. 물론 새 대통령보다 먼저 핀 녀석들도 있긴 있었다. 그렇다고 그 녀석이 결코 매화가 아님은 또한 아니질 않는가. 날씨 탓에 매화는 지금부터가 제격이다. 바야흐로 온 들녘을 이름답게 누비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되는 것도 과정이야 어떠하든 이렇게 보면 참 순간적이다. 슈베르트나 슈만이 그의 시를 즐겨 작곡했던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뤼케르트는 "운명이 내일 무엇을 결정할 것인가를 묻지 말라. 순간이야말로 우리들의 것이다. 자, 순간을 맛보지 않겠는가"라고 했었다. 매화나무를 두고 한 말일까마는….

겨울 잔설 속에서도 굳건히 꽃 피워
역경도 견뎌내는 고매한 기품 예찬
평생 매화를 사랑한 퇴계 이황 선생
유언마저 "분매에 물을 주어라"
한강 정구도 초당에 매화정원 만들어

조선 시인 어무적의 작품 '작매부'
매화가 화의 근원이 된 사건 담아
탐관오리가 매화 열매까지 징수하자
화난 농민들 매화나무 도끼로 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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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 화엄사 홍매.
순간의 개념을 처음으로 규정했던 플라톤도 '운동과 정지 사이의 일종의 장소를 갖지 않는 기묘한 것'으로 순간을 정의했다. 그러나 시간의 범주에는 넣지 않아서 시간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영국인들도 '천 년 동안을 두고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수가 있다'며 순간의 인연을 늘 삶 속에서 중히 여겼다.

세상에 순간은 허다하다. 너무 많아 헤프기도 하고, 금방 왔다가 너무나 황망히 사라져 버린다. 불교에서는 이를 '찰나'로 부른다. 여러 불경을 바탕으로 1 찰나를 현대적으로 계산하니 75분의 1초(약 0.013초). 느끼지도 못한다. 인간이 적어도 120 찰나는 돼야 느낄 수 있다니 어떻게 보면 인간은 참 느리기도 하다. 그렇지만 재빠른 인간들도 얼마나 많은가. 과학의 진보에 재빠른 인간들은 더 재빨라진다. 그러나 찰나 같은 인생의 짧음에는 아무도 비켜 갈 수가 없다. 덧없이 느껴지기도 하고 허무해진다. 예전보다 인생이 훨씬 더 길어진 100세 시대인데도 아쉬움은 여전하다. 재빠른 인간들일수록 그런 아쉬움이 깊다는 게 다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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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군 수륜면 대가천 옆 한강 정구를 기리는 회연서원의 매화.
◆이제야 봄!

이제야 봄이다. 3월을 절반 이상을 넘겨 겨우 봄 같다. 찬 바람도 많이 가셨다. 긴 가뭄 끝에 흡족하지는 않다지만 단비도 내려 산불 걱정도 우선 덜었다. 섬진강 다리 인근의 하동과 광양 매화는 이미 질 듯 며칠 사이 홍매에서 백매로 바뀌려나 화사함이 장관이다. 덩달아 전국의 매화들이 들썩인다. 이때. 흔히 회자되는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의 '매설헌시(梅雪軒時)' 한 구절을 그냥 두면 봄이 아니지.

달아맨 창 아래 쉬이 앉아 주역을 읽는다(燕坐軒窓讀周易)

가지 끝에 흰 것 하나에 하늘의 뜻 보이네(枝頭一白見天心)

천심은 곧 하늘의 뜻이다. 온갖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며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순간, 매화는 이미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다. 삼봉은 자신의 이 시에 주석을 달며 '흰 것 하나로 표현한 것은 매화를 가리킨다. 매화는 일양이 처음 움직이는 계절에 피기 때문에 이렇게 읊었다'고 했다. 일양이 처음 움직이는 계절이라면 만물이 겨울잠에서 막 깨어나 봄으로 드는 시기다. 매화가 봄의 전령사요 선봉임을 말하고 있다.

◆퇴계와 한강의 매화사랑

사학자요 근세의 문필가였던 호암(湖岩) 문일평(文一平)도 매화를 논한 글들을 남겼다. 그는 '화하만필(花下漫筆)'에서 "우리나라에는 동매(한매)가 없고 춘매뿐이며, 동매는 애호가들 사이에서 분재로 키워지고 있다"고 전하며 우리나라에는 매화의 명소가 없는 대신 운현궁 등 몇 군데는 매실이 있는 등 매실 있는 집은 흔했다고 적었다. 조선 중기의 대유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도 평생 매화를 좋아했고 많은 매화시를 남겼다. 무엇보다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돌아가실 때의 엄숙하고 감동적인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다. 그 감동적인 장면을 후대에 알려주는 '고종기(考終記)'를 읽어보자. '여드렛날 아침에 선생은 일어나자마자 제자들에게 "분매(盆梅)에 물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셨다. 맑기만 하던 날씨가 날이 저물자 갑자기 흰 구름이 지붕 위에 몰려들더니 흰 눈이 펑펑 쏟아져 순식간에 한 자가량 쌓였다. 선생은 제자들에게 누워 있던 자리를 정리하라고 하셨다. 문인들이 안아 일으키자 앉은 채 숨을 거두셨다. 그러자 구름도 걷히고 눈도 개었다. 장엄한 최후를 목전에 두고 대유학자의 지극한 매화 사랑이 눈부시다. 매화의 청고한 지절과 너무나 닮은 퇴계의 일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광양 섬진마을 매화
전남 광양군 섬진강변 매화마을의 매화.
그런 스승 이황의 매화 사랑을 좇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요 학자였던 제자 한강(寒岡) 정구(鄭逑). 경북 성주의 회연(檜淵) 옆에 초당을 마련하고 매화 100그루를 심어 '백매원(百梅園)'이라는 정원을 만들고 '백매헌(百梅軒)'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한겨울 잔설 속에서 피는 '동매'가 아니고 따듯한 봄이라야 피는 '춘매'의 일종이었던 것 같다. 비록 춘매일망정 그 시절에는 얼마나 장관이었으랴. 그런데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한강의 친구가 어느 날 찾아와 모조리 매화나무를 잘랐다고 전한다. '백매원' 매화나무가 한매가 아니고 춘매라는 이유에서다. 아마도 많은 선비들은 한매의 빙옥 같은 지절과 청초한 모습에서 선비의 정신을 발견했을 터이다.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도 매화를 두고 '동짓날 긴긴밤에 홀로 그 백화며 청향을 대할 때 비로소 법열의 순간을 얻을까 한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지금 회연서원 백매들은 성장과 쇠퇴를 거듭하며 대가천이며 봉비암과 더불어 소동파가 말했듯 '얼음처럼 차고 맑은 넋, 구슬처럼 희고 깨끗한 골격'을 보여 주고 있다. 지금은 길이 잘 닦여 찾기도 쉽다. 서원 위쪽의 솟은 봉비암은 성주군이 자랑하는 무흘구곡 중 제1곡이며 겸재 정선을 비롯 많은 묵객들이 묵흔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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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매부

이 정도로 매화이야기를 끝내려니 딱 한 사람이 걸린다. 매화니(梅花尼). 원대 때 강남땅에 살았다는 여승이었다는 설만 전할 뿐 이름과 생애는 모두 알 길이 없다. 그의 시 '매화(梅花)'를 읽어 보자.

하루 종일 봄을 찾았으나 봄을 보지 못하고(終日尋春不見春)

짚신으로 동쪽 산 구름 속을 답파하였네(芒鞋踏破嶺頭雲)

돌아와 향내를 맡고 웃으며 수염을 꼬니(歸來笑撚梅花臭)

봄이 가지 위에 온통 와있더라(春在枝頭已十分)

이 시를 대하고 어떤 이는 깨우치기까지 했다니 가히 일품이다. 매화는 단순히 봄이 오면 저절로 피는 꽃일까. 아니다. 잔설 속에서도 꽃을 피운다. 마치 암울한 시기를 이겨내고 희망과 광명을 알리고 압박과 고난을 이기는 선각자의 형상과 너무 흡사하다고 한문학자 윤호진 교수(경상대)는 분석해 내고 있다.

그러기에 매화는 조선 연산군시대의 시인이었던 어무적(魚無迹)이 고향 땅에서 탐관오리들이 매화나무 열매인 매실을 무리하게 징수하자 사대부들이 그토록 칭송했던 매화를 농민들이 도끼로 쪼개는 기막힌 현실을 보고 '작매부(斫梅賦)'를 지었다. 정약용(丁若鏞)의 '애절양(哀絶陽)'과도 맥을 통하는 이런 시들은 정치의 잘못을 질책하고 고난과 인고의 세월을 이겨 내려 몸부림치는 백성들의 울부짖음이었다. 지난 대선 때의 이대남과 이대녀의 뜬금없는 대척은 생각할수록 너무 애닳다.

매화가 단순히 즐거움만 주는 완상물이 아니고 화의 근원도 됨을 일러주니 이런 봄날 매화가 더 아름답게만 여겨진다. 발그스름하거나 뽀얀 다섯 꽃 이파리에 둘려진 지고의 곡선이 쭈뼛하게 마른 매화 등걸과도 희한하게 조화를 이루니 봄은 정녕 매화의 계절이 아니고 무엇이랴.

글=김채한 전 달성문화재단 대표
사진=배원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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