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되풀이되는 투기공화국의 희극

  •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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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22   |  발행일 2022-03-22 제22면   |  수정 2022-03-22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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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박근혜 정부 초기에 주택시장은 하락세였다. 2014년 이후 서울 강남이 주도한 집값 상승은 정책 변화에 힘입은 바 컸다. 재건축 규제와 대출 규제를 풀고 주택임대사업자에게 특혜를 주면서 집값이 뛰었다. 이명박 정부가 종부세를 무력화시킨 효과도 컸다. 그때부터 본격화된 부동산 투기와 가계부채 증가는 문재인 정부 기간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일련의 부동산 대책은 과열을 잠재우지 못했고 정책적 오판이 잇따랐다. 세입자들의 주택 매수 감소를 기대하면서 주택임대사업자 혜택을 확대했더니 집주인들의 주택 매수가 폭증했다. 전세자금 대출을 이용한 갭 투자로 집값은 치솟았다. 종부세 강화와 대출 규제 강화에도 불구, 늘 규제 사각지대를 남기는 국지적인 핀셋 대응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이 실패하는 순간이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영끌'의 '패닉바잉'이 진정된 게 엊그제인데 한국경제는 빚내서 집 사라던 2014년으로 되돌아가는 듯하다. 윤석열 당선인이 내건 부동산 정책이 심상치 않다. 공약집을 살펴보면 종부세를 다시 무력화시켜 문재인 정부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의지가 읽힌다. 취득세 감면과 함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도 무효화할 태세다. 거래세든 보유세든 부동산 세금은 전부 낮춘다. 재건축 규제도 푼다. 분당 등 1기 신도시와 서울 강남의 재건축을 돕겠다고 혈안이다. 재건축에 따른 초과이익을 환수해온 기존 제도를 대폭 완화하고 분양가와 용적률을 올려 사업성을 극대화하겠다고 한다. 대출 규제도 푼다. 그간에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낮춰온 담보인정비율 상한선을 70% 이상 보장하겠다고 한다. 주택임대사업 등록자에 대한 혜택도 다시 늘린다. 일부러 외면하지 않고서야 이와 같은 정책 변화의 결과가 어떨지는 예측이 어려울 리 없다. 이미 강남에서는 신고가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 않은가.

혹시 수도권 이외 지역에 미칠 영향은 더 나쁠지도 모르겠다. 윤석열 정부는 5년간 250만호를 신규 공급하고 그중 약 60%를 수도권에 배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광역급행철도(GTX) 노선을 증설해 수도권 전체를 단일 메가시티로 육성한다. 수도권 공급분의 절반은 공공택지로 조성한다고 하니 막대한 시세차익을 예상하는 사람이 벌써 나온다. 반면에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눈에 띄지 않는다. 후순위인 것만은 틀림없다. 투기수요가 집중될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공급을 늘리면 수도권 집값은 더 오르고 가계부채는 더 늘어나기 쉽다. 수도권에서는 공급확대 자체가 대개 추가적인 개발 호재인 탓이다. 그 과정에서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은 더욱 가속화된다.

오늘 한국경제는 대전환의 변곡점을 통과하고 있다. 저성장이 고착되는 가운데 코로나 위기가 장기화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치면서 경제회복의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대출금리 상승에 따른 가계부채 부실화 위험도 심화되는 양상이다. 구조적 위기의 징후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제대로 된 부동산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가계부채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모양이다. 자산불평등은 남의 일인가보다. 대한민국을 더 한층 투기공화국으로 만들 퇴행적인 정책, 부동산 부자들만 위하는 정책이 최악이다. 결국 철학자 헤겔의 말대로 이번에도 역사가 되풀이된다면 한 번은 문재인 정부 정책 실패의 비극일 테고, 다른 한 번은 역사로부터 배운 것 없는 윤석열 정부의 희극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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