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태의 제3의 눈] 동티모르, 잊어버린 신생 공화국 20년

  •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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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25   |  발행일 2022-03-25 제22면   |  수정 2022-03-25 07:03
동티모르의 문제는 고인물
대통령·총리를 지낸 오르타
일흔두살에도 또 대선 도전
독립영웅 74세대 실패상징
이젠 물갈이가 필요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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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분쟁 전문기자

"독립! 국민으로서, 영토로서, 국가로서! 한 몸, 한 마음, 한 소원."

국기를 목에 두른 대통령 샤나나 구스망의 독립 선언과 함께 딜리 앞 바닷가 벌판은 수십만 시민이 외치는 환성으로 뒤덮였다. 1975년부터 인도네시아에 점령당했던 동티모르가 독립의 꿈을 이루는 그 순간은 한과 기쁨이 어우러진 거룩한 신세계였다. 포르투갈 식민통치(1769~1975년)를 거쳐 233년 만에 외세로부터 벗어났으니.

1991년 산타크루즈 학살 뒤 첫 외신기자로 잠입해 인연을 맺고부터 샤나나 옥중인터뷰, 독립 결정 국민투표, 친인도네시아 민병대 폭동, 제헌의회 선거, 정부 수립, 독립에 이르는 험한 길을 쫓았던 내게도 그 순간은 벅찬 감동이었다. 21세기 첫 독립국가 탄생 현장을 내 눈으로 보고 기록한 건 기자로서 더할 수 없는 행운이었고. 그게 2002년이었으니 꼭 20년 전이다.

느닷없이 동티모르 기억을 꺼낸 까닭은 사흘 전 딜리에서 기자로 일하는 친구 전화를 받고부터다. "자네도 이제 우리 동티모르와 연 끊었지? 세상에 배신당한 기분인데. 아무도 우릴 눈여겨보지 않으니." 대뜸 털어놓는 내 친구 넋두리엔 진한 외로움이 묻어났다.

그랬다. 내가 20년 동안 애틋하게 쫓아다녔던 동티모르에 발길을 끊은 지도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2012년 총선 취재가 마지막이었으니. 그러고 보니 온 세상 언론이 단골 머리기사로 뽑아 들던 동티모르가 사라진 지도 그쯤 된 것 같다.

22일 치른 동티모르 대통령 선거만 해도 그렇다. 웬만하면 국제면 한 귀퉁이에라도 뜰 텐데 외신판도 우리 언론도 덤덤하기만. 내남없이 다들 너무 '큰 것'만 쫓아다닌 게 아닌가 싶다.

해서 말이 난 김에 국제면이 다뤄야 할 동티모르 대통령 선거 뉴스를 이 칼럼을 통해서나마 한 줄 전할까 한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전 대통령 하무스 오르타가 46.58%를 얻어 현 대통령 프란시스쿠 쿠테흐스를 크게 앞섰으나 선거법이 규정한 50%를 아무도 못 넘겨 4월19일 결선 투표를 치르게 되었다.

동티모르의 문제는 고인 물이다. 대통령과 총리를 지낸 일흔두 살 오르타가 또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섰듯이, 마찬가지로 대통령과 총리를 했던 일흔여섯 살 샤나나가 또 총리를 노리는 판이고 보면.

2001년 대통령 샤나나는 "한 번으로 족하다"며, 2008년 대통령 오르타는 "마지막 봉사다"며 손사래 쳤다. 2012년, 전 총리 마리 알카티리는 "독립투쟁 이끌었던 74세대(알카티리, 오르타, 샤나나)가 물러날 때 됐다"며 세대교체를 입에 올렸다. 다들 나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이어 2015년 74세대는 신세대한테 정치를 넘긴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7년 만에 74세대의 권력병이 또 도진 꼴이다.

이 74세대는 동티모르 독립투쟁 영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권력투쟁을 벌인 줏대이기도 했다. 그 20년은 실패였다. 동티모르 시민은 여전히 세계 최빈국 딱지를 달고 절대빈곤에 허덕이며 지난한 정치 분쟁에 시달리고 있다.

"진실을 말하기엔 너무 위험하다." 2008년 암살 기도로 총 맞은 대통령 오르타와 음모를 외쳤던 총리 알카티리가 내게 했던 똑같은 말이다. 대통령과 총리마저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이상한 나라, 동티모르 실패의 상징이다. 시민은 오죽하랴! 물갈이가 필요한 까닭이다.

동티모르를 말하다 보니 우리 정치판이 겹쳐지는 불편한 아침이다. 대한민국은 안녕하신지?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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