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상실과 혐오와 분노의 시대

  • 박성혜 (주)판권연구소 대표
  • |
  • 입력 2022-03-29   |  발행일 2022-03-29 제23면   |  수정 2022-03-29 07:12

2022032801000908000038601
박성혜 <주>판권연구소 대표

2010년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2017년 세계와나 편집부는 '혐오의 시대'를, 2018년 판카지 미슈라는 '분노의 시대'란 책을 냈다.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앞다투어 그 시대를 정의하고 새롭게 정의된 시대 안에서 우리는 살아가게 된다. 2022년인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을까.

2010년 '상실의 시대'라는 책의 제목처럼 나의 20대에는 'N포 세대'라는 말이 새롭게 떠올랐다. 연애도, 결혼도, 취업도, 출산도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다는 N포 세대들은 이제와 돌이켜보니 참 갸륵했다. 가질 수 없다고 생각 드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해버리고 누구의 탓도 하지 않은 채 포기하며 현실로 받아들였다.

혐오의 시대는 난폭했다. 이미 그 이전부터 '된장녀, 맘충'과 같은 혐오에서 비롯된 신조어들이 탄생은 했지만 지금의 남혐·여혐과 같이 지독하고 악독한 편갈라치기는 없었다. 이렇게까지 폭력적이던 시대가 있었던가 싶을 만큼 이제는 과격한 혐오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혐오는 더 큰 분노를 낳아 목적 없고 대상 없는 잔인한 분노의 시대까지 도래하게 만들었다.

혐오에는 선동이 따라다닌다. 혐오를 이용하여 선동하고 집단의 목적을 달성한다. 예를 들어 유대인 대학살, 르완다 인종대학살, 스페인 독감, 코로나 등 결국 어떤 현상의 배후에 정치적 목적을 삼을 때 집단적인 혐오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남성혐오 조장과 탈코르셋 운동의 배후가 레즈비언이란 워마드 내부 고발 글을 본 적 있다. 동성애에 관해 거부감이 없던 나로서도 해당 글은 적잖이 충격이었다. 레즈비언이 여성과 연애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성들의 남성 혐오를 조장한다는 내용이었다. 워마드 내부 고발자의 글이었으나 그것이 실제 사실이든 거짓이든 우리는 집단적 혐오를 마주할 때 그 속에서 누가 이익을 누리는지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혐오는 상대방을 인정하는 데에서 멈출 수 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상대방을 '그럴 수도 있지'라며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혐오는 사그라든다. 반대로 과도하고 비뚤어진 연대와 공감은 혐오를 더욱 강화시킨다. 자신의 집단에 과도한 공감과 충성은 내집단과 다른 외집단을 향한 혐오와 차별을 낳게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최근의 대통령 선거가 그렇다. 대통령이 누가 되었건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하면 칭찬을 하는 것이 마땅하고, 잘못된 행동을 하면 비판하는 것이 당연지사인 것을 자신의 집단에서 대통령이 선출되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하여 아묻따 행해지는 비난은 성숙하지 못한 모습으로, 혐오를 낳는 행위다.

마지막으로 분노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길어지는 코로나 블루로 외부와 단절된 채 모바일 속 익명 세상이 익숙해진 요즘 우리는 너무나 쉽게 분노한다. 이제는 마치 놀이하듯 분노한다. 어떠한 타깃을 설정하고 우르르 몰려가 마녀사냥을 하는 것이 마치 요즘의 놀이 같아 보인다. 누군가 잘못을 했으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친 것이 아님에도 분노하고 괴롭힌다.

상실과 혐오와 분노가 결합된 이 시대를 나는 '인류애 멸망' 시대로 정의하고 싶다. 혼돈의 인류애 멸망 시대. 각자 자신이 가진 스스로의 지도를 펼쳐 들고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은 어떨까. 서로의 길을 난도질하며 훼손하지 않고 자신들 각자의 길을 더욱 다져가면서 말이다. 오늘 하루 나부터 먼저 상대를 인정해보자.
박성혜 <주>판권연구소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