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고재종 / 나무 속엔 물관이 있다

  • 송재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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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04   |  발행일 2022-04-04 제25면   |  수정 2022-04-04 07:12

잦은 바람 속의 겨울 감나무를 보면, 그 가지들이 가는 것이나 굵은 것이나 아예 실가지거나 우듬지거나, 모두 다 서로를 훼방놓는 법이 없이 제 숨결 닿는 만큼의 찰랑한 허공을 끌어안고, 바르르 떨거나 사운거리거나 건들대거나 휙휙 후리거나, 제 깜냥껏 한세상을 흔들거린다.

더더욱 그 실가지 하나에 앉은 조막만 한 새의 무게가 둥치를 타고 내려가 칠흑 땅속의 그중 깊이 뻗은 실뿌리의 흙샅에까지 미쳐 그 무게를 견딜 힘을 다시 우듬지에까지 올려보내는 땅심의 배려로, 산 가지는 어느 것 하나라도 어떤 댓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당참을 보여주는가.

고재종 / 나무 속엔 물관이 있다


나무 아래서 위를 쳐다보면 나뭇가지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시인은 그것이 "모두 다 서로를 훼방놓는 법이 없이 제 숨결 닿는 만큼의 찰랑한 허공을 끌어안는다"고 생각한다. 나뭇가지라는 규칙 위에 작은 새가 앉았다. 그 미세한 무게를 나무는 자연이 넘겨준 무게라고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전율은 나무를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칠흑 땅속의 실뿌리와 흙샅조차 새의 안착을 알게 된다. 그리고 실뿌리와 흙샅은 다시 그 무게의 감동을 나무 끝의 우듬지까지 올려 보낸다. 그것을 '땅심'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작은 새의 무게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자 생각이면서 시대를 움직이는 '땅심'이라고 생각을 확장하지 않더라도 시인의 시선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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