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지금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김영우 동반성장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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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27   |  발행일 2022-04-27 제26면   |  수정 2022-04-27 07:09
'문화의 도시' 대구의 자긍심
정치에 매몰돼 잊고 사는가
풍요로운 삶 위한 고전음악
시민에게 좀 더 다가가도록
다양한 프로그램 제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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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 동반성장연구소 연구위원

파리 17구에는 특별한 음악회가 있다. 국립 음악학교 에꼴 노르말에서 열리는 이 음악회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모두에게 개방한다. 1919년 문을 연 이 학교는 피아노의 거장 알프렛 코르토가 만들었는데 1981년부터 매주 화·수·목요일 '점심시간 음악회(les concerts de midi et demi)'를 열어 대중들에게 고전음악을 선물한다.

코르토는 1905년 파블로 카잘스(첼로), 자크 티보(바이올린)와 함께 '카잘스 트리오'를 만들어 33년간 활동했는데, 작은 살롱에서만 연주되던 실내악을 대형 콘서트 무대에 올려 더 많은 청중과 만나게 한 선각자였다. 그는 권위적이었던 고전음악을 대중에게 다가가도록 노력했고, 학교는 그의 정신을 기려 1929년 500석의 코르토 연주홀을 만들어 보답했다.

파리에 살 때 옆집의 샤스땅 할머니는 어느 날 점심시간 음악회를 알려 주었다. 12시 반에 모인 파리사람들의 표정에서 기대감이 느껴졌고 나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주로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연주 경험을 제공하는 음악회라는 것을 알 무렵, 마담 샤스땅은 책을 한 권 권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였다.

이 소설은 파리를 무대로 3명의 남녀가 엮어낸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심리적 묘사가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6시에 플레이엘 홀에서 음악회가 있어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화려하고 장중한 바그너 음악을 좋아하는 주인공에게 고전적인 브람스 음악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이 한마디는 주인공이 한때 브람스도 좋아한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을 일깨워 주었다.

며칠 전 대구를 다녀오면서 문득 사강의 소설이 생각났다. 대구가 한동안 잊고 살았던 것은 무엇이었나. 대구사람들에게는 대구가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라는 자긍심이 있지만, 이를 잊고 산 것이 아닌지. 예를 들면 1964년 설립된 대구시립교향악단은 긴 역사뿐만 아니라 많은 음악가를 배출한 대구문화의 중심이었다.

근래 국민들은 계속되는 선거로 정치 이슈에 관심이 높은 것 같다. 물론 정치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이슈임이 틀림없지만 정치에 대한 관심만으로는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없다. 코로나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삭막해진 상황에서 삶의 휴식과 잊고 산 것을 찾아보는 여유도 필요하다.

모차르트는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이 시작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렇다. 음악은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고, 사람 사이를 이어 주는 정제된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대구는 문화도시답게 고전음악이 대중에게 좀 더 다가가도록 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음악인들을 위한 멋진 연주회장도 중요하지만, 시민에게 다가가기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어져야 한다.

재단사로 일했던 마담 샤스땅은 2차 대전 때 점령당한 파리에서 군복을 만들 때 "슈넬(빨리), 슈넬"이라 외쳤던 독일군의 비정한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독일 작곡가 브람스의 인간적인 음악에는 매료되어 가끔 들려주었다. 다음에 파리에 가면 '점심시간 연주회'에 다시 가볼 생각이다. 나는 지금도 브람스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김영우 동반성장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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