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파리의 피아니스트: 후지코 헤밍의 시간들…늦깎이 음악인의 달고 쓴 인생의 선율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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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29   |  발행일 2022-04-29 제39면   |  수정 2022-04-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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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세상을 마주한 영혼의 피아니스트.' 60대에 데뷔해 8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세계 무대를 누비며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후지코 헤밍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 그의 콘서트 티켓은 오픈하자마자 매진이 되고 세계 각지에서 그녀를 향한 러브 콜은 끊이지 않는다. 2001년 6월 뉴욕 카네기홀 매진, 데뷔 앨범인 '라 캄파넬라'는 클래식계에서는 이례적으로 100만 이상 판매되는 대 히트를 기록했다. '파리의 피아니스트: 후지코 헤밍의 시간들'은 그런 후지코 헤밍의 화려한 명성 뒤의 굴곡진 인생사를 2년에 걸쳐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후지코 헤밍은 피아노 교사 출신 일본인 어머니와 스웨덴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족을 떠난 아버지와 헤어져 도쿄에서 어머니 손에서 자란 그는 일찌감치 피아노 신동의 면모를 보였지만 1940년대 역사적 시대의 한복판에서 온갖 시련을 맞았다. 무국적 신분 때문에 유학은 고사하고 20년간 난민 생활을 해야 했고,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심지어 중이염으로 오른쪽 귀의 청력까지 잃었다. 그는 14세 때부터 그리기 시작한 그림일기를 통해 파란만장했던 삶의 일부를 들려준다. 혼혈아라고 학교에서 당한 따돌림과 괴롭힘, 가족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복합적인 마음, 자신을 엄격하게 대한 어머니와의 갈등 등 예민한 사춘기 소녀의 그림일기 속에선 아티스트로서 또 다른 심미안이 발견된다.

영화가 천착한 건 세계 곳곳에서 콘서트를 펼치는 모습 한편으로 보이는 평범한 그의 일상이다. 후지코가 1년 중 절반을 지낸다는 파리의 아파트는 1889년에 지어졌을 만큼 그는 낡고 오래된 것을 좋아한다. 집에 대한 애착도 큰 편이라 "자신의 이름보다 집을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후지코는 반려묘와 반려견이 가족이자 친구다. 아티스트로서는 자신에게 혹독하고 금욕적이지만, 인간으로서는 약자와 동물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그는 "언제나 열여섯 살 소녀인 것만 같다"고 스스로를 정리한다. 그의 의상도 눈길을 끄는 대목인데, 열정적인 연주와 독보적인 개성만큼이나 그의 의상은 자유로움과 화려함 그 자체이다.

그는 "기나긴 인생 여정을 통해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녀를 대표하는 곡은 바로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다. 영화 속에서는 2017년 12월1일 도쿄 오페라 시티에서 행해진 솔로 콘서트를 5분에 달하는 길이의 풀 버전으로 감상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온갖 고난을 이겨낸 그의 삶이 온전히 묻어나는 아름다운 연주다. "최고의 연주라 믿고 피아노를 치지, 그래서 잘 해낼 수 있었다"는 그의 다음 투어 콘서트는 아프리카 대륙이다.(장르:다큐멘터리 등급:전체관람가) 윤용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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