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디판' (자크 오디아르 감독·2015·프랑스 )…가족이 되어 서로를 끌어안은 난민 이야기

  •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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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29   |  발행일 2022-04-29 제39면   |  수정 2022-05-02 14:27

영화심장

제68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영화를 뒤늦게 봤다. '예언자'와 '러스트 앤 본'으로 유명한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강렬하다. 거친 겉모습 속에 부드러운 속마음을 감춘 인물들이 등장한다. 야생동물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 진한 서정성이 깃들어있고, 절망 속에서도 살아 숨 쉬며 부대끼는 인간들이 있다. 유럽 난민 문제를 다룬 '디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주인공은 스리랑카 내전을 피해 디판이라는 인물의 신분증을 구한다. 처음 보는 여인과 소녀를 데리고 가족으로 위장해서 프랑스에 간다. 파리 외곽에 일자리를 구한 그들은 가족 행세를 하며 지내는 동안 서로를 조금씩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갱들이 판치는 그곳 역시 전쟁터나 마찬가지임을 알고 좌절한다. 타밀 반군의 전사였던 주인공은 새로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또 하나의 전투를 한다.

각본을 겸한 감독은 카페에서 꽃 파는 이들을 보고 어디서 왔는지가 궁금했다 한다. 이것이 이야기의 출발이었다. 이 영화로 세자르영화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안토니타산 제수타산은 실제로 카밀 반군 출신이다. 상처 입은 호랑이 같은 그의 표정은 다른 배역들의 생생한 연기와 더불어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 동력이다.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와 폭력 속에서 흐르는 비발디의 종교음악(Nisi Dominus)은 숭고하기 그지없다. 어두운 영화임에도 어딘가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지는 건 음악의 힘이다. 그리고 안식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간절한 마음과 기도 때문이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에 가장 드라마틱한 화법'이라는 평을 듣는 감독의 이야기는 예술 영화가 일반적으로 갖는 지루함을 뛰어넘어 시종일관 마음 졸이며 지켜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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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영화의 엔딩은 영국으로 건너가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모습이다. 영화 내내 어둡다가 갑자기 환해지는 장면은 판타지 같다. 현실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게 당연한데, 난민들에게 그런 해피엔딩은 기적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눈부신 해피엔딩은 주인공의 꿈 아니, 감독의 꿈일 것이다. 그런 희망 한 자락이, 감독의 마음이 눈물겹다.

현실적으로 보면 철저히 판타지일 수밖에 없는 이 해피엔딩은 주인공의 마음속 꿈을 펼쳐 보인 건지 모르겠다.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밀림 속 코끼리 모습처럼 말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구한 순간, 남자의 상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상상이라 해도 사랑을 얻은 순간이 바로 안식처를 찾은 게 아니던가. 처음 정착한 마을 이름인 '작은 초원(르 프레)'처럼.

오랜만에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마음이 복잡할 때면 늘 그러듯 베란다에 나가 화초를 정리했다. 시든 잎과 웃자란 잎들을 떼어내고 병든 줄기들을 잘라냈다. 봄을 노래하듯 활짝 핀 꽃들을 한참 보다가 저녁을 먹었다. 꽃게를 넣은 된장찌개를 끓여 밥을 비벼 먹다가 새삼 깨달았다. 이런 일상의 작은 행복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들도 소박한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는 일상의 작은 행복에 얼마나 눈부셔하고 있는가?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미 다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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