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이기성 / '고기를 원하는가'

  • 송재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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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02   |  발행일 2022-05-02 제25면   |  수정 2022-05-02 07:12

고기가 되었다. 나는 던져지고, 베어지고, 씹혀지고, 삼켜지고 그래도 남은 것이 있어 나는 고기로 있다. 이 회색의 고기는 질기고, 무참하고, 아픔을 모르고 그래서 계속 씹히고 있는 채로 있다. 고기의 몸으로 구르고 씹히니 즐겁고, 기껍고, 어쩐지 고기인 것이 더 느껴진다. 고기는 어느 뼈아픈 시절의 고기인가, 의문도 잊은 채 적막한 고기처럼 있다. 사랑에 빠진 고기처럼 고기는 고기를 원하는가.

이기성 '고기를 원하는가'

시인이 씹어 먹는 고기는 냉혹하거나 질겨 보인다. 핏물이 덜 빠졌을지도 모른다. 첫 문장부터 서늘하다. "고기가 되었다"라는 단언! 여기 고기를 바라보면서 자신을 고기로 인식하는 시선이 있다. 낯선 고기이다. 카프카의 벌레보다 더 끔찍한 고기가 여기 있다. 그레고르 잠자는 아침에 벌레가 되었지만, 시인은 고기를 씹고 삼키다가 고기가 되었다.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의 씹혀야 하는 고기이다. 고기가 되었을 때 "던져지고, 베어지고, 씹히고, 삼켜지고 그래도 남은 것이 있어" 겨우 고기로 남겨졌다. 그나마 고기로 남겨진 것이 다행이라는 고기이다. 하지만 고기로 남겨진 마음과 몸은 고기라는 과거이면서 현재이거나 또한 미래이다. 고기라 자각하기 전에 고기이고 자각 이후에도 이미 고기라는 슬픔이 깔린다. 그것은 고기의 속성, 본질, 의미를 고스란히 유지한 고기이다. 고기라는 단어들이 무수히 나열된다는 것은 우리가 고기를 얼마나 많이 먹었을까 라는 구역질의 증례이기도 하다. 이 고기는 나이면서 고기이기도 하고 타자이면서 고기이다. 누군가 고기일 때 나는 고기에 대해 편애만 가졌다. 이제 내가 고기이니까 이 고기는 내가 이해하고, 이해해야 하는 이타성을 띠고 있다. 고기라는 물질계의 미시적 나찰행이자 거시적 미타찰행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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