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용준의 閑談漫筆] 활터 이야기

  • 하용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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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06   |  발행일 2022-05-06 제22면   |  수정 2022-05-06 07:15
자격미달 정치인 아집·독선
국민들 삶의 질 떨어뜨려
한달도 남지 않은 지방선거
당보고 무조건 찍지말고
사람의 자질보고 잘 뽑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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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준 (소설가)

우리나라 활쏘기의 공식 명칭은 국궁이 아니라 궁도다. 일본에서는 큰 대나무활인 죽궁을 쏘는데 이를 규도(弓道)라고 한다. 우리도 일본과 똑같은 한자어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대한궁도협회 산하 약 400개소의 궁도장에서 3만5천여 명의 동호인들이 활쏘기를 즐기고 있는데 매년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경향 각지에서 크고 작은 대회가 열린다.

궁도장 사대에서 과녁까지는 145m. 큰 야구장의 홈에서 중앙펜스를 훌쩍 넘기는 홈런과 비슷한 거리다. 그 먼 거리에 아파트 현관문짝 두 장 크기의 과녁을 세워 놓고 활을 쏘는 것이다. 힘이 세다고 해서 잘 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요인이 정교하게 복합적으로 잘 작용해야 까마득한 과녁을 맞힐 수 있는 멋진 전통무예다.

조선시대의 무과 규구(規矩·시험과목)에 활쏘기는 철전 정량전 유엽전 편전과 같이 화살 종류에 따라 여러 과목이 있었다. 옛 문헌에는 활쏘기를 사례(射禮)라고 하였다. 각 지방에서 실시하는 활쏘기 대회를 향사례, 국가 차원에서 실시한 것을 대사례라고 한 데서 활쏘기는 우리 민족 고유의 풍속인 한편 국무(國武)로서 중요시하였음을 잘 알 수 있다.

활은 쏜다고 하지 않고 낸다고 한다. 쏜다고 하면 표적에 대한 집착의 느낌이 난다. 그에 비해 낸다고 하면 집착이나 승부를 떠난 겸양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근래에 들어 활쏘기는 도량을 넓히고 호연지기를 기르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생활스포츠가 되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갈등이 없는 궁도장은 단 한 곳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둑 장기와 같은 기예는 하급자가 절대로 고단자를 이길 수 없다. 그런데 활쏘기는 다르다. 신사(新射·갓 입문한 궁사)와 구사(舊射·관록이 있는 궁사)가 나란히 서서 쏘는데 쏠 때마다 결과가 다르다. 신사가 자꾸 더 잘 맞히면 구사는 슬그머니 심기가 불편해진다. 활이 좀 된다 싶으면 우쭐거린다. 함부로 모두를 가르치려고 든다. 사두(射頭·활터의 수장) 사범 등의 권좌에 앉고 싶어 한다. 온갖 없는 말을 지어낸다. 질투와 험담은 일상사가 된다. 끼리끼리 패거리를 짓고 분란을 야기한다. 누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편이 우위에 서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오직 나만 내 편만 옳다. 급기야 점입가경의 행태가 벌어진다. 극단적인 대립으로 법적 소송도 불사한다. 드디어 보다 못한 행정기관이 나서서 궁도장을 폐쇄하는 사태에 이른다.

세상 어디에나 경쟁이 있는 한 호승심은 영원하다. 하지만 진정 잘난 사람은 스스로 뽐내지 않을뿐더러 다른 사람들을 시기하거나 낮잡아 보지 않는다. 그들도 다 잘난 것을 알기 때문이다. 꼭 식견이 얕고 속이 좁은 못난 사람들이 무단히 자만하여 경쟁과 대립을 일삼으며 분란을 키우다가 끝내 전체를 파국에 이르게 한다. 일부 궁사들이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지 못한 채 패거리를 지어 싸우기만 하다가 마침내 모두의 활터를 잃게 만드는 것처럼 자격미달 정치인의 억지스러운 아집과 성찰 없는 독선은 당파와 정쟁을 넘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거나 터전을 잃는 신세가 되게 한다.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현명한 국민이라면 소속 당을 보고 무조건 찍을 일이 아니라 오직 사람의 자질을 잘 헤아려 뽑아야 한다. 그래야만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고 우리 정치의 수준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릴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좌우 극단적 대립'이라는 시대적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일으켜야 할 때다. 해묵은 난제의 해법을 찾아보고자 아득한 145m 과녁으로 화살 한 발을 피웅 날려본다.

하용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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