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과학의 길이

  • 정낙천 DGIST 신물질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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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0   |  발행일 2022-05-10 제22면   |  수정 2022-05-10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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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낙천 (DGIST 신물질과학전공 교수)

우주의 크기를 이야기할 때 광년의 길이를 사용한다. 1광년은 광자가 1년간 이동할 수 있는 거리로서, 빛이 1초간 이동할 수 있는 거리(약 299,792㎞)로부터 계산하면, 1광년의 거리는 약 9.5조㎞(9,460,730,472,580㎞)이다. 우리 태양계의 크기는 약 0.00127광년이고, 우리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의 크기는 10만5천700광년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도시는 이에 비하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가늠할 수 있겠다.

관점을 더 작은 곳으로 옮겨 보자. 1860년대 스웨덴 과학자 안데르스 요나스 옹스트롬(Anders Jonas ngstrom)은 태양빛의 스펙트럼을 실험적으로 관찰하고 빛의 파장을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마일(mile) 또는 미터(m)의 길이 단위로 표시하기에 빛의 파장의 길이가 너무 짧아 본인만의 표기방식으로 다양한 파장의 빛들을 분석했다. 약 50년 후 1907년이 되어 그의 이름에 기인한 새로운 길이 단위, 옹스트롬(ngstrom, )이 제안된다. 이 길이의 단위는 10-10 m이다. 우주의 만물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지구 지각과 대기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인 실리콘이나 알루미늄, 산소, 질소, 수소 원자의 크기가 1-2 수준이니 이 크기 단위가 얼마나 작은 것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이 원자를 바라보는 것은 마치 지구가 모래알 한 알을 바라보는 것과 유사하다.

모래알에는 굵은 모래알과 작은 모래알이 있다. 모래알들의 크기가 조금씩 다르더라도 우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모래알일 뿐이다. 그러나 원자의 세계로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화학에서는 원자 크기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물질이 형성될 것인지 혹은 형성되지 못할 것인지를 설명한다. 또한 결과적으로 설명하면, 원자의 크기가 작을수록 해당 원자가 전자를 당기는 힘이 대체로 강해진다. 이는 원자로 구성된 분자의 특성으로도 이어진다. 가령 산소원자는 탄소원자보다 작다. 이들 산소원자와 탄소원자가 각각 수소원자와 결합하여 분자를 구성하게 되면, (물론 이들이 갖는 전자수가 크게 작용하면서도) 전혀 다르게 물 분자(H2O)와 메탄분자(CH4)를 형성한다. 물론 이들 분자는 전혀 다른 특성을 보인다.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도 물분자의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메탄분자로부터 또 다른 관점으로 가보자. 가령 실을 떠올려보면, 짤막한 실 조각부터 긴 실 조각까지 다양한 길이의 실 조각을 상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탄소로 구성된 탄소화합물은 작게는 탄소 한 개로 구성된 메탄분자부터, 탄소 세 개 또는 네 개로 구성된 화합물, 즉 연료로 사용되는 프로판과 부탄을 구성할 수 있다. 나아가 탄소원자가 이보다 많아지면, 석유가 되기도 하고, 이보다 더 많아지면 폴리에틸렌과 같은 (가령 비닐봉지와 유사한) 고분자가 형성될 수 있다. 즉 분자적 관점으로 시각을 확대하면, 분자는 길이에 따라 소분자에서 고분자까지 다양한 물질들을 형성하며, 이들은 완벽하게 다른 특성을 보인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사회변화를 물의 끓는 현상(가령 물이 100℃까지는 액체의 형태이나, 그 온도가 100℃가 넘어가면 수증기로 변화되며 질적으로 물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현상)에 빗대어 "양적변화의 질적변화로의 전환 (양질전환)"을 논한 바 있다. 1977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필립 앤더슨 교수는 1972년 사이언스지에 기고했던 'More is different'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런 헤겔의 철학이 과학의 영역에서도 일어난다는 논리를 설파했다.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과학발전의 축적은 기술발전으로 전환된다"는 점을 우리는 경험해 왔다. 다시 말해 "기술의 길이는 과학의 길이에 기인한다"는 점을 숙고하고자 한다.

정낙천 (DGIST 신물질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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