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일상회복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

  • 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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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0   |  발행일 2022-05-10 제22면   |  수정 2022-05-10 07:15
실외 마스크 착용의무의 해제
사회 각분야의 문화행사 통해
일상회복의 새 전환점을 마련
코로나속 대안 제시한 故김종철
인생의 소중한 가치 '풍요' 아닌
공동체적 연대에 있음을 일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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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석 (시인)

#마스크

아직 그대로다. 아무도 선뜻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아니 벗지 못한다. 5월2일부터 마스크 착용의무는 해제됐다. 실외 한정이긴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정부가 처음으로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 이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김부겸 총리가 "코로나19 관련 방역과 의료상황은 확실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며, "오미크론 변이 정점 기간과 비교할 때 확진자 수는 20% 이하, 위중증 발생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중증병상 가동률도 10주 만에 20%대로 내려왔다"고 했어도 이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완화 바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코로나의 위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렇지 않은가. 지난달 29일 WHO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 코로나 확진자 수는 5억953만여 명에 이르고, 누적 사망자만 해도 623만여 명이 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변이종이 나타날 조짐도 불안을 더해준다.

마스크 해제는 2020년 10월13일 정부 차원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시작된 지 약 1년 반 만이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실외 한정이라도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는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마스크 해제가 정치 쟁점화로 떠오르기도 한다.

어쨌든 이 같은 정부 방침은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고통을 받아온 국민들에게는 하나의 의미 있는 전망을 가늠케 하는 듯하다. 우리 사회가 모처럼 만에 급속하게 풀리는 기미를 보이기도 한다. 사회, 문화, 경제계 전 분야에서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 그동안 쳐두었던 울타리를 허물기 시작했다. 지자체들은 발 빠르게 '일상회복 지원 문화행사' 추진계획을 실행한다. 사회 각 분야의 일상 회복 본격화에 대응한 행사들이다. 문화행사를 통해 코로나로 지친 시민들을 위로하고 일상 회복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고자 함이란다. 각종 축하공연과 경축 퍼포먼스, 각종 기념공연 등과 함께 '트로트 페스티벌', 지역 가요 콘서트 등의 이름으로 이달 말에서 7월까지 집중적으로 열린다.

아산시가 23일 일상회복을 위한 문화, 체육, 식생활 지원과 복지지원 계획을 발표한 것도 그중 하나다. 시는 삶의 여유를 느끼고 만끽할 수 있는 영역인 문화예술, 체육, 식생활 분야가 그동안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며,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전환된 지금 시민의 일상이 보다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화순군은 단계적 일상회복에 발맞춰 기획 전시회를 시작으로 연극, 영화,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한다. 휴관 중인 작은 영화관 '화순시네마'를 재개관하고 공연, 영화, 전시회, 문화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재개되면 군민의 문화향유 기회가 확대되고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국에서 이는 이런 활기는 그러나 아직은 불안이 가시지 않은 채로의 활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김종철

이 시점에서 문득 코로나라는 엄청난 재앙을 숙고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려 애썼던 고 김종철 선생이 떠오른다. 그는 코로나19를 인류에게 준 하나의 '고마운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적으로 강조했다.

"해월 선생이나 장일순 선생님이 살아계시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 이분들 같으면 어떤 마음으로 사실까. 결국 결론은 저하고 같을 거라고 봅니다. 하는 데까지 우리가 노력하자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아우슈비츠에 대한 연구서들도 그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처했을 때, 궁극적으로 사람이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게 만드는 것이 뭡니까? 이웃이잖아요.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옆에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절망스럽고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일수록 우리가 옆에 있는 사람하고 잘 지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비상상황일수록 우리가 사람을 더 아끼고, 물자를 더 아끼고, 더 아끼는 마음으로 살아야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이제 천하의 진리인 것 같아요."

김종철 전 녹색평론 발행인이 2020년 6월 갑자기 타계한 직후 녹색평론 2020년 7~8월호에 실린 그의 '생명사상과 환대의 윤리'란 제목의 글이다. 그는 이 글을 끝으로 유명을 달리해버렸다. 그러니까 이 글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한 마지막 말인 셈이다. 앞의 글은 그 글의 끄트머리에 붙인 말이다.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게 있다.

그의 사후 2년이 다 되어가는 즈음인 최근 그의 칼럼집 '발언3'이 출간됐다. 국내 언론에 기고했던 글들을 엮은 것이다. 이 칼럼집에 들어 있는 다음의 말 역시 우리 마음을 후빈다.

"우리는 오랫동안 별생각 없이 물자와 에너지를 흥청망청 소비하는 생활을 '풍요로운' 삶이라고 오해하고, 휴가라면 으레 항공여행과 골프와 크루즈 항행 따위를 떠올리면서 그게 '좋은 삶'이라고 믿는 정신적 빈곤 속에서 지내왔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리에게 '좋은 삶'에 대해 차분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드문 기회가 주어졌다. 그 결과,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풍요'가 아니라 '자유'라는 것을 통감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상당 기간의 억제된 소비생활 끝에서 우리는 뜻밖에도 우리의 삶에서 정말 필요한 물건은 몇 가지 안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건강한 먹을거리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좋은 농사와 노동, 비옥한 흙과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좋은 인간관계와 공동체적 연대 이외의 모든 것은 결국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우리는 깨달았다."

생태사상가이자 실천적 민주주의자였고, 무엇보다 농업, 농촌, 소농을 가장 중시한 농본주의자였다. 그의 사후 "이제 누가, 미친 성장과 개발을 멈추고 생태와 소농을 살리라고 외칠 것인가"라는 탄식 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그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남긴 간곡한 말이 새삼 여전히 고통받는 우리들의 가슴을 뜨겁게 두드린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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